김지하 시인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 추모시’ 중앙일보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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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생명은 그이의 평생 화두

 시대는 생명의 때다.

평화와 함께 생명이 이 시절의 총 화두다.

그 생명을 참으로 구체적으로 걱정하고 애써 마련하는 이가 귀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때다.

박재일.

이 분이 바로 그 귀한 분이다.

이 분이 돌아가셨다.

어찌 서운하고 서럽지 않으랴!

평생을 생명 한 글자에 그야말로 생명을 바치신 분. 남들 몰두하는 일체 가치 너머 삶의 근본에서 그 근본을 꿰뚫 때 더욱이 그것을 참으로 구체적으로 생활적으로, 그렇다! 생명적으로 관철하셨다.

‘생명문제의 생명적 관철!’

모심!

‘밥’이다.

‘밥’이 박재일 선생의 최고 철학이었다.

구하신 분 가시는 길에 어찌 상서로운 꽃다발이 없을 수 있으랴!

나사렛 예수는 밥을 ‘사크라리온’, ‘현실적 신성성’ 혹은 ‘거룩한 지역’이라 불렀으니

聖餐!(성찬)

雲門禪師(운문선사)는 ‘塵塵三昧(진진삼매)’라, 다름 아닌 ‘華嚴法身(화엄법신)’이라 하였으니

한살림!

해월 선생은 ‘밥 한 그릇이 萬事知(만사지)’라 드높이 칭송하였으니

모심!

박재일 선생은 바로 이 ‘현실적 신성성’, 곧 현대문명사 최고의 숙제인 ‘마음 속의 몸’을 실사적으로 탐구하신 수도자다.

다름 아닌 ‘산알’이다.

이제 우리는 깊이 고개 숙여 이 분의 뒤를 따르는 일, 참으로 거룩한 ‘사리’를 찾아 현실의 숲과 몸을 헤쳐나가야 할 때다.

안심하고 편히 가소서 총총.

경인 2010년 8월 19일 못난 벗 김지하 삼가 모심



※시인 김지하는 생전의 박재일씨와 대학 시절부터 나란히 반독재 투쟁을 펼쳤으며, 원주에서 함께 유기농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고인을 기리는 추모시를 본지에만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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