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 2004년 대선 불출마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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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 민주당 내에서 2004년 대선후보를 향한 선두주자로 꼽히던 앨 고어(사진)전 부통령이 15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고어 전 부통령이 재대결을 벌일 가능성은 사라졌다. 고어의 퇴장으로 민주당 내에선 6∼7명의 예상후보 간 경쟁이 더욱 뜨거워졌으며 미국의 대선 정국도 일찍 달아오르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팀은 안개에 싸인 민주당 레이스를 지켜보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날 CBS프로 '60분'에 출연해 "개인적으로는 출마하기 위한 에너지와 야망을 가지고 있지만 출마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이란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만약 내가 부시 대통령과 다시 붙으면 불가피하게 과거문제에 쏠릴 것"이라며 불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상당수 정치 분석가들은 고어 전 부통령이 민주당의 중간선거 패배, 부시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 자신에 대한 민주당 일각의 비판 여론, 가족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불출마를 결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잖은 민주당원들은 고어 전 부통령이 2000년 대선에서 현직 부통령과 경기 호황이라는 유리한 조건에서도 대선에 패한 점을 들어 그의 경선 출마를 반대해왔다.

2000년 11월 대선 때 고어 전 부통령은 전국 득표에서는 50여만표 앞섰으나 플로리다 선거에서 5백여표가 뒤져 주 선거인단 25명을 놓치는 바람에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당시 개표소동의 막바지에서 연방대법원은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선 패배 후 고어는 약 1년 가까이 정치활동을 삼가고 대중의 시선에서 비켜나 있었다. 그는 9·11 테러가 터진 후 부시 대통령을 "나의 최고사령관"이라고 떠받들어 국민적 단합에 기여했다. 또 턱수염을 기르며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조용하던 고어는 그러나 약 1년 전부터 대중 앞에 다시 등장했다. 그는 우선 직업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웨스트 파이낸셜이란 금융회사의 부회장을 택했다. 고어는 대선 설욕전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대학강의·강연·방송출연 등에 정력을 쏟았다.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고어는 부시 대통령을 향해 발톱을 세웠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 구상을 신랄히 비판했으며 기업회계부정·증시폭락 등을 부시의 경제 실정(失政)으로 몰아붙였다. 고어는 지난 11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 후보들을 집중 지원했으며 최근에는 부인 티퍼 여사와 함께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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