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하기 위해 讀圖法·햄 등 자격증 10여개 취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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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경창(吳京昌·41) 하나은행(옛 서울은행) 검사부 차장은 깔끔한 양복 차림에 상냥하고 차분한 말투, 부드러운 미소가 영락없는 은행원이다. 하지만 그는 주말이면 한손에 휴대용 무선통신기를 들고 40∼3백명의 회원을 이끄는 늠름한 산악대원으로 변신한다. 吳차장의 '이중 생활'을 탄탄하게 뒷받침해 주는 것은 그가 취득한 10여개의 자격증이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스쿠버 마스터·독도법(讀圖法·오리엔티어링)·아마추어무선사(HAM)….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자격증들은 모두 등반을 위해 취득한 것이다.

"우선 등산학교에서 7주 정도 암벽타기, 자일 사용법 등을 익히고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또 길을 잃지 않고 잘 가려면 독도법을 익혀야죠. 아마추어무선사는 등반 때 통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요? 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지루해 하더라고요. 하하…."

스쿠버 자격증을 딴 이유를 묻자 "물 속에도 산이 있다기에 한번 보고 싶었다"며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吳차장은 1979년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서울은행에 입사했다. 홀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말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가 그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86년 서울은행 산악회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실무를 맡고 있다.

"저 외에도 15명의 안내 대원들에게 등산 전문요원증과 햄 자격증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유사시에 전국 20만 햄 동호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무선통신기 연락 체계를 갖춘 곳은 우리 산악회밖에 없을 겁니다."

말레이시아 키나바루봉 등 해외 원정을 비롯해 주말마다 산행을 다니느라 행여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자 吳차장은 쑥스러운 얼굴로 또 다른 자격증을 내놓았다.

"증권분석사 자격증입니다. 서울은행 출신 직원 3천3백여명 중 저를 포함해 세명만 이 자격증을 갖고 있죠."

미국공인선물중개사(AP)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는 국제금융역 시험을 마무리하고 있는 등 '금융맨'으로서의 공인 자격증도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97년 인터넷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는 5년 동안 산악회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단순한 동호회 홈페이지에서 출발한 종합레저사이트 '위크앤드21(www.weekend21.com)'의 방문자 수는 이제 50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그간 위크앤드21을 구축하느라 다른 자격증을 따는 데 소홀했습니다. 공인중개사와 미국공인회계사(AICPA)에 곧 도전할 계획입니다."

지난 2일 합병한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업무 통합 작업으로 바쁜 와중에 과연 그가 자격증 공부를 위한 시간이나 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단기간에 승부를 내야 합니다. 6개월 이상 끌게 되면 시간 내기가 어렵고 체력도 바닥납니다. 2개월 정도를 목표로 잡고 매일 오전 2∼3시까지 전력을 다해 공부해야지요."

해마다 자격증 1개 이상을 취득해 온 '자격증 왕'답게 그는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자격증 따기 요령을 몇가지 알려줬다.

"나이가 들면 암기력보다 이해력이 늡니다. 외우지 말고 이해하려고 하세요. 한번 시험에 떨어져도 부담 갖지 말고 그 다음해까지는 공부를 쉬세요. 2개월 바짝 하고 나면 푹 쉬어줘야 체력이 유지됩니다. 또 수험준비 기간에도 주말에는 등산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합니다."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그의 열정이야말로 늘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그만의 '자격증'이었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idi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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