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에 女風 분다지만 경제활동참가 벽 높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각종 고시에서 '여풍(女風)'이 대단하다. 올 외무고시 합격자의 45.7%가 여성이다. 유달리 금녀(禁女)의 벽이 높았던 외무고시는 1990년만 해도 여성 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행정고시는 28.4%가, 사법고시 2차 합격자도 23.9%가 여성이다. 7·9급 공무원 공채는 이미 여성 비율이 더 높고, 고시에서 여성의 수석합격은 흔한 일이 됐다.

여성들이 안정적이고 차별이 적은 편인 공직을 선호하는 데다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한 취업 한파와 여성우대 정책도 한몫 했다. 그렇다고 여성의 취업이나 사회활동이 전반적으로 확 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전히 50% 벽을 넘지 못한 상태다. 십년 넘게 47∼48%선을 맴돌고 있다. 남성보다 25%포인트 정도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거의 꼴찌수준이다. 여성의 취업 문턱은 여전히 높다. '키 000㎝ 이상'등의 채용 조건을 달거나 '여비서 급구''커피 심부름을 할 수 있는가''결혼 후에도 계속 근무할 것인가' 등을 묻는 기업도 있다. 오죽하면 여성부가 모집·채용 등의 과정에서 남녀차별 금지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지난달 '남녀차별금지기준'고시를 개정했을까. 대통령 후보들도 집권하면 정부 고위직의 일정 비율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힘들여 취업하더라도 언제 내몰릴 지 모르는 비정규직(지난해 여성 취업자의 67.9%, 남성은 39.7%)이 많고, 급여도 상당수 직종에서 남성의 70%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성인력 활용 문제를 더 이상 '여성을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보아선 곤란하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여성인력 활용을 요구한다. 2020년 안에 인구증가율이 멈추며 총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7%)에서 '고령사회'(노인 인구가 전체의 14%)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빠른 속도로 진입한다. 이런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의 영향으로 2024년부터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진다.

이런 형편에서 여성 문제의 해결 없이 고령화 고개를 넘길 수 없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에 대한 제1의 대안이 여성인력 활용이다. 20대까지 여성의 평균 교육연수가 남성보다 많은데도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하거나 출산·육아 문제로 중도에 직장을 중도에 그만 두게 만드는 것은 국가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손실이다.

국가적으로 보육사업을 확대해 여성의 자녀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일부터 시작하고, 시장원리를 도입해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 굳이 여성부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모집·채용 때 남녀차별 금지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인식되는 때가 빨리 와야 말 그대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jay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