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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⑬ 바이오 '농업 혁명' 앞장 선 경북 :'명품 농산물'로 富農꿈 일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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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북 경주농업기술센터는 올해 초 경주시로부터 1억원의 예산을 특별 지원받아 기능성 식품개발사업에 한창이다.

농업기술센터는 4년여의 식재시험 끝에 최근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야생 음나무(또는 엄나무)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내남면과 감포읍에서 묘목 3만주가 자라고 있다. 음나무를 길러온 농민 30여명은 지난해 이른바 '경주 음나무'의 어린 순과 잎을 백화점과 음식점 등에 팔아 짭짤한 소득도 올렸다.

농업기술센터 김선활(金善活·41)내남상담소장은 "부산지역 백화점 바이어들이 경주 음나무의 순과 잎을 서로 가져가려고 할 만큼 판로도 이미 확보됐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한방에서 전해오는 음나무의 효능에 주목, 감식초 개발의 주역인 계명대 정용진(鄭容震·39·식품가공학)교수에게 기능성 식품 개발을 의뢰했다.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음나무에 홍삼과 비슷한 성분인 사포닌이 듬뿍 들어 있었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등의 물질이 추출된 것이다. 鄭교수는 음나무 가지에서 이 같은 성분을 뽑아내 키를 크게 하는 과립차 등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경주시와 鄭교수는 발표회를 가진 뒤 특허를 출원하는 계획도 차분하게 추진 중이다. 제품이 시판되기 시작하면 1주당 5천원 정도의 수익에 그치고 있는 음나무의 부가가치가 10배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약·홍화 등 약초를 많이 재배하는 의성군에 위치한 경북농업기술원 신물질연구소는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렸던 세계농업한마당 전시장에 끈끈이주걱·땅귀이개 등 자생 식충식물을 증식해 선보였다.

말로만 듣던 식충식물을 처음 본 청소년·주부 등 관람객들은 현장을 떠날 줄 몰랐다. 행사장을 찾은 제리 넬슨 세계작물회장(미국 미주리대) 등 외국인들도 토종 식충식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봉화군 상운면에서 식충식물을 조직 배양하고 있는 최병호씨는 지난해 서울지역 식물원 등에 관상용 등으로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신물질연구소는 약초 연구 일변도에서 벗어나 파리·모기 등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에 대한 주부들의 관심을 농가소득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농도(農道) 경북이 바이오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 대응,살아남기 전략의 하나다. 기술을 지원하는 경북농업기술원과 지역 대학까지 가세해 지역 특산물을 중심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공동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의성의 신물질연구소와 안동의 생물자원연구소, 성주 과채류시험장,청도 복숭아시험장, 풍기 인삼시험장 등 경북의 9개 특화작목시험장들이 바이오농업의 전초기지다.

이들 연구소와 시험장은 현지 농민들과 병충해 방제와 품종 개량 방법 등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의 동향까지 함께 논의한다.

신물질연구소는 2년 전 백출이란 야생 약초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은 야산에서 뿌리 상태로 채집됐지만 갈수록 채취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험장 재배 2년 만에 최근 수확한 백출은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연구소는 내년부터 농가 보급과 함께 재배 기술도 전수해 줄 예정이다. 이밖에 최근 5년 동안 홍화 꽃잎의 다수확 재배법 등 모두 39건의 연구 결과를 농가에 보급했고 홍화 잎에서 루테오린이라는 물질을 정제하는 기술 등 특허도 출원했다.

약초를 재배하는 농민 80여명은 '약초연구회'란 동호회를 만들어 연구소와 수시로 정보도 교환한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중국산 한약재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가 이들의 주된 관심사다. 작약만 해도 식품으로 수입된 중국산이 약재로 둔갑해 국산의 시세가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신물질연구소 최성용(崔誠容·농학박사)장장은 국내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산 약재의 물량 공세에 맞서기 위해 "약초에서 신기능성 물질을 뽑아내 부가가치를 높이는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수입 한약재를 2·3차 가공한 뒤 역수출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참외단지 성주군 대가면에 들어선 성주과채류시험장은 성주참외의 명성을 지키려는 품질 고급화의 현장이다. 당도를 더 높이고 노란 색깔에 연한 육질 참외를 개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수륜면 수륜농협은 3년 전에 '한방참외'라는 브랜드도 개발했다. 수륜농협 이종률(李鍾律·50)상무는 "일반참외는 5㎏ 한 상자에 1만5천원 선인데 한방참외는 이보다 30% 이상 비싼 2만원에 출하된다"고 말했다. 물량이 부족해 롯데·현대 등 서울지역 백화점들의 주문에 농민들의 비명이 쏟아진다.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처음으로 일본 수출 길도 열었다. 내년엔 10억원어치를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농협은 또 '비파괴 선별기'를 도입해 참외를 당도와 무게에 따라 15가지 등급으로 구분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도 힘을 기울인다.

시험장과 참외연구회 농민 2백여명은 최근 성주군에서만 수백억원 대의 손실을 가져오는 참외 뿌리혹선충을 방재하는 개가도 올렸다.

과채류시험장 박소득(朴小得·44·농학박사)장장은 "세계 최고의 참외를 재배하겠다는 목표로 일을 하고 있다"며 "모든 작목반에 비파괴 선별기를 도입하는 것이 1차 과제"라고 말했다.

지역 대학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계명대 전통미생물자원개발 및 산업화연구센터(TMR)는 과학기술부와 공동으로 지역 바이오 사업에 앞으로 9년 동안 2백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대구대는 1백30억원을 투자해 수출용 수박 포장용 골판지 상자 개발 등 농산물 저장·가공 및 산업화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계명대는 이미 홍국(紅麴)이란 곰팡이를 이용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쌀을 선보였고 차와 캡슐 등 건강보조식품으로도 개발했다. 성주 수륜농협은 자체 개발한 유기질비료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이 연구소에 의뢰했다.이 연구가 마무리되면 수륜농협 측은 성분을 포장지에 구체적으로 표시해 비료의 시판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TMR센터 이인선(李仁善)소장은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며 "일본처럼 한 시·군이 한 명품을 키우는 식의 방향으로 산업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성=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협찬:PO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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