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反美 자제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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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군 무한궤도 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요구가 확산하는 가운데 정치권이 반미(反美)기류 자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반미기류의 원인과 처방을 놓고 정치권의 논란 또한 거세져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관계기사 3면>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대표는 9일 선거전략회의에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반미감정은 위험한 수준"이라며 "잘못된 SOFA는 개정돼야 하지만, 남북이 여전히 대치 중인 상황에서 경솔한 미군 철수 주장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徐대표는 "이런 사태는 모두 김대중 정권에 책임이 있다"며 "현 정권 들어 반미가 급속히 확산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장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는 당사에서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 대표단을 만나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만큼 이번 사건이 한·미 동맹관계를 악화시키는 새로운 불안 요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盧후보는 "정치인은 정치인의 몫이 있으며 서명·시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일을 푸는 게 아니라 영합하는 자세일 수도 있다"며 "실질적 한·미관계 변화를 위해 전력하겠다"고 대표단의 서명 및 시위 참여 요구를 거절했다.

정치권의 반미기류 편승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자민련의 이인제(李仁濟) 총재권한대행은 기자회견에서 "여야 대선 주자들이 추도시위에 참석하는 등 반미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급급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나로 국민연합'의 이한동(李漢東)후보도 "대선 후보들이 표만을 의식, 다투어 반미경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 처사는 정치지도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김종철(金鍾哲)대변인은 논평에서 "진보성향표를 노려 盧후보도 하지 않은 범대위 서명을 한 李후보나, 보수층을 끌어안으려 서명을 거절한 盧후보는 모두 기회주의자"라고 양측을 공격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는 국회에서 회담을 하고 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를 열어 한·미 간의 SOFA 개정상황을 점검한 뒤 이르면 이달 내에 SOFA 개정을 촉구하는 국회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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