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도 서민대출 꺼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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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상호저축은행(옛 상호신용금고) 중 3백만원 이하의 소액신용대출을 중단하는 곳이 늘고 있다. 소액대출의 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빌려준 돈의 회수가 어렵게 되면서 저축은행의 건전성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급한 돈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처지에 놓이고 있다.

동부상호저축은행의 경우 올 하반기부터 소액신용대출을 줄여왔으며 최근 들어 아예 소액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동부저축은행은 3백만원 이하로 빌려준 돈 가운데 연체된 돈의 비율이 올 상반기 10%대에서 9월 들어 20%대로 높아졌다.

이 저축은행의 박신용 신용대출 담당은 8일 "한때 잔액 기준으로 2백20억원까지 이르렀던 소액신용대출 규모가 지금은 1백9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며 "신규대출뿐 아니라 기존 대출에서도 심사를 강화해 여러 금융회사에 빚이 많은 고객에게는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호저축은행 중앙회에 따르면 동부저축은행 외에도 서울·한신·한중 등 10여개의 저축은행이 소액대출을 전면 중지하고 기존 채권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한솔저축은행의 경우 최근 모집인을 통한 소액신용대출 업무를 중단했다.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에게만 돈을 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한솔의 지점 13개가 모두 서울에 있으므로 그동안 모집인을 통해 지방 서민에게 해왔던 소액신용대출 업무는 중단한 셈이다.

◇소액신용대출 줄이는 이유=소액대출을 중단한 저축은행들의 연체율은 대개 20% 안팎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소액 신용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현행 50%에서 내년 1월부터 75%, 내년 4월부터 1백%로 확대된다. 소액신용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판국에 위험가중치마저 커져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질 입장에 놓이게 된 저축은행들로선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 대한 소액대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소액신용대출의 연체율이 갑자기 높아진 것은 신용카드회사에서 외면당한 고객들이 저축은행으로 대거 몰리게 된 탓이 큰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카드사의 대출시장이 급증하다 정부 규제로 카드사에서 현금서비스 비율을 대폭 줄이자 신용도가 낮은 카드고객들이 저축은행을 이용하면서 연체율이 두배 가까이로 뛰었다는 것이다.

결국 은행과 카드사를 전전하던 서민들이 저축은행으로 몰려왔는데 여기에서조차 소액신용대출을 꺼리면서 결국 불법 사채시장에서 연 4백∼5백%의 고금리를 감수하게 되는 악순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금융감독원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의 분석이다.

상호저축은행 중앙회 관계자는 "아직까지 소액신용대출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저축은행들마저 대출조건을 강화하고 있어 소액대출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며 "저축은행들이 앞으로 신용대출보다 안전한 담보대출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영업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su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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