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실업률 9.7%… 실업자 400만명 해외로 구직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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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독일의 노동자들이 해외 구직에 나서고 있다.

수백만명의 '가스트아르바이터(독일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던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의 국민이 거꾸로 일자리를 찾아 독일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1960∼70년대만 해도 터키·이탈리아는 물론 영국·아일랜드의 노동자들이 독일어로 작별인사를 하고 독일로 떠나는 장면이 유럽 각국의 TV프로그램에 단골 소재로 그려졌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제 유럽경제의 문제아로 전락했고, 오히려 역이동 조짐이 보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 전했다.

경제 침체에 따른 사상 최대의 기업 파산,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실업난이 그려낸 오늘의 독일 풍경이다.

◇떠나는 독일 노동자들=해외 구직은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등 다른 곳보다 실업률이 20% 가량 높은 구 동독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베를린의 한 노동사무소 관계자는 "올 들어 지금까지 이미 1천여명의 동독 젊은이를 아일랜드에 성공적으로 이주시켰다"고 말했다. 이곳에 몰리는 해외 구직 문의도 9천여건으로 지난해의 7천여건을 이미 넘어섰다.

독일 정부는 해외 구직자 통계를 잡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 구직 이민을 반영하는 유럽연합(EU)의 '특별고용 계획'에 독일인이 2001년 중 25%나 급증했다는 것은 독일 노동자들의 해외 구직 붐을 보여준다.

독일인들의 해외 구직이 늘어난 것은 극심한 실업난 때문이다. 여기에 유럽통합과 유로화 도입으로 다른 유럽국가에서의 취업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바닥이 안보이는 독일 경제=FT는 지난 10월부터 독일 경제가 만성적인 디플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과 흡사하다고 경고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 경직된 고용구조, 정책의 부재 등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미 각종 지표들은 독일병이 일본병 못지 않은 만성병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공영 ARD 방송은 올 들어 기업·개인 파산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내년에는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4일(현지시간) 전망했다. 올 11월 말까지 파산한 기업·개인은 8만2천4백건으로 지난해보다 66.4%나 증가했다.

파산에 따른 금융기관의 손실도 3백84억유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억유로(18.9%)나 늘었다.

이날 노동청이 발표한 독일의 11월 실업률은 9.7%로 전달보다 0.3%포인트 높아졌다. 실업자 수도 4백2만5천명으로 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취업난이 해결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특히 실업률은 옛 서독지역이 7.8%인 데 비해 옛 동독 지역은 17.6%로 지역격차가 심각하다. 독일인의 해외구직이 이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정재기자

jjy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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