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정치]李·盧 "예산 늘리고 위상 높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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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이공계 기피현상과 함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과학기술계에도 어김없이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각각 10월 18일과 11월 18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초청을 받고 '과학기술정책 포럼'에 참석,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과학기술을 한 목소리로 지목하며 나름대로의 비전을 제시했다.

노무현 후보는 과학기술의 보편적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이회창 후보는 연구비 투자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인상을 풍겼다. 또 李후보는 '국내 화학계의 태두' 이태규 박사를 백부로 둔 사실을 앞세우며 과학기술자 우대, 여성과학기술자 문호 확대, 과학기술 투자 확대 등에 대해 구체적인 법 개정보다는 대통령 스스로의 관심과 의지를 강조한 반면 노후보는 관련 제도와 법 개정에 우선순위를 뒀다.

두 후보 모두 연구개발비의 증액을 똑같은 수준으로 약속했다. 연구개발비의 비중을 현재 정부예산의 4.7% 수준에서 7%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초과학 연구비 또한 현재 총연구개발비의 19% 수준에서 25%로 인상할 것을 공언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민철구 연구위원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합리'라는 전제 아래 장기적인 차원에서 효율성을 먼저 따진 뒤 요건을 만족하면 과감하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행정조직 개편 부분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좀더 적극적이다. 이회창 후보가 청와대 내 과학기술 특보의 신설과 과학기술부 장관의 부총리급 격상을 검토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반면 노무현 후보는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또는 과학기술특보의 신설을 약속했고 과학기술부를 부총리급의 '과학기술지식부' 또는 '미래기술지식부'로 확대개편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자 사기진작 차원에서 두 후보는 모두 연금제도의 신설을 약속했다.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를 위해 노후보는 공무원 신규임용 때 이공계 출신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릴 것을 약속했고 이후보는 과학기술인의 국회 비례대표 진출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두 후보 모두 기술고시 인원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현행 고시제도의 폐단에 대해서는 개선·보완 외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고시 출신으로서 한계를 드러냈다.

두 후보는 또 연구원 각자의 인건비를 벌어오도록 만드는 출연연구소의 프로젝트 기반시스템(PBS)의 개선을 약속했다. 정부출연금으로 보조되는 인건비에 대해 노후보는 현행 40%에서 60%로 상향 조정하고 이후보는 50% 이상을 보장했다. 이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옥상옥'이란 지적을 받고있는 연구회 체제의 개선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두 후보의 정책포럼에 모두 패널로 참석한 서울대 김도연(재료공학부) 교수는 "약간의 방법론적 차이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요과제로 상향조정하겠다는 의지와 방향은 거의 같았다"며 "약속한 대로만 국정이 돌아가면 만점짜리 답안지와 다를 바 없으나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공약보다는 실천과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함께 누리는 과학기술'이란 구호 아래 ▶과학기술연구에 공공투자 확대▶과학자대표·시민대표가 참여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구성▶BK21을 중단하고 이를 개별연구자에 대한 지원으로 전환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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