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공동 워크아웃 꺼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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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은행들이 함께 추진하는 '중소기업 공동 워크아웃'제도가 겉돌고 있다. 반면 각 은행이 진행하는 개별 워크아웃은 활기를 띠고 있다.

19일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은행 공동 워크아웃 제도가 도입된 뒤 지난 연말까지 대상 기업은 모두 30개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조정 대상 금액도 회사당 평균 30억원씩 900억원에 불과했다. 공동 워크아웃 대상은 은행 대출이 50억~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이다.

은행별로는 기업은행이 10건이었고, 국민은행 9건, 신한은행 8건 등의 순이었다. 하나.우리은행은 각각 2건과 1건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각 은행과 대상 기업이 직접 협약을 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개별 워크아웃은 900개 이상의 업체를 대상으로 1조원 가까운 금액이 지원됐다. 우리은행 698건, 국민은행 55건, 하나은행 49건 등이다. 개별 워크아웃이 공동 워크아웃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공동 워크아웃이 부진한 것은 대상 기업이 이를 기피하는데다 은행권도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공동 워크아웃을 선택할 경우 자금 사정 등 기업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기 쉬워 경영이 힘들어질 것을 걱정한다. 한 은행의 중기 담당자는 "개별 워크아웃에선 기업개선작업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갈 경우 해당 기업은 물론 주채권은행도 타격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밀 보호가 철저하다"며 "반면 공동 워크아웃에서는 소문이 나기 쉬워 해당 기업의 비은행권 대출 상환 압박이 심해진다"고 말했다.

은행권 역시 중기지원 관리 노하우 유출 등을 꺼린다. 일부 은행은 공동 워크아웃 개시 전에 채권을 회수하기도 한다. 워크아웃 뒤 은행 간 채무재조정 협상도 대출 규모와 만기.담보 순위 등이 달라 합의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공동 워크아웃은 지난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은행이 외면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이벤트성으로 발표된 것"이라며 "애초부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제도였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공동 워크아웃을 사실상 포기하고 개별 워크아웃의 성과를 높이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 1분기에만 새로 60개 업체를 선정해 개별 워크아웃을 실시하기로 했다. 다른 은행들도 지난해 하반기에 실시한 상시 신용평가에서 부실징후가 감지된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별 워크아웃 대상을 추려 채무재조정과 경영 자문 등에 나설 방침이다.

나현철.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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