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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결혼까지 순결 소중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 뉴저지주의 한 공립고 교사인 수전 위태커(42)는 최근 "학교에 안가겠다"는 10학년(한국의 고1) 여학생의 부모와 상담했다.

이유는 그 여학생과 성관계를 맺은 12학년 남학생이 그 사실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소문이 나서 전교생이 그 홈페이지를 화제삼으며 수군거리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놀랐다. 인터넷에 올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런 내용이 전교생의 화제가 되는 상황 때문이었다. 홈페이지 내용도 그냥 평범한 성 경험담 수준이었다. 사실 우리가 학생일 때에는 커플이 아주 특이했다든가 하는 정도가 아니면 소문거리가 되지 못했다. "

고교생들의 조기 성경험, 10대의 높은 출산비율 등으로 유명했던 미국 사회가 어느새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가 최근 발표한 통계를 들여다보면 미국 고교생들의 성경험 비율은 10년 전보다 10%포인트 줄어들었고, 인구 1천명당 10대(15∼19세) 출산율도 1991년 6.2명에서 2000년 4.85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 중 고교생에 해당하는 15∼17세 사이는 약 30%나 줄었다.

<그래픽 참조>

"뭐니뭐니 해도 학생들에 대한 성교육 덕분이다. 9학년 때부터 의무적으로 1년에 한번씩 '헬스'과목을 통해 성관계의 의미, 임신을 피하는 법, 임신했을 때의 대처 요령 등을 가르친다. 성병으로 인해 끔찍하게 변한 성기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 어김없이 '우'하는 탄성이 나온다. "

흑인 학생이 많은 메릴랜드주 JFK고의 실라 더빈스 교장은 "과거에는 프롬(졸업파티)이 사실상 성관계를 의미했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학교나 부모가 그렇게 되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 파티 이후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모조리 차로 데려가게 하는 것은 물론 파티 때도 맥주 한 방울 못마시게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공익법인인 '틴스 헬스'의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제 40, 50대로 부모 입장이 된 베이비붐 세대의 '반성 효과'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이들 세대는 보수적인 부모들에 맞서 혼전섹스·마리화나·반전시위·히피문화·계약동거 등 자유분방함을 추구했지만 결국은 현실로 돌아왔고, 이들의 경험과 자기 성찰이 자녀들에게도 이전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95년 20여명의 고교생들이 '영화로 청소년들을 타락시키지 말라'면서 오스카상 시상식장을 점거하면서 촉발된 '혼전 순결운동'도 한몫을 했다.

이 사건의 주동 학생들은 당시 '순결한 사랑 연맹(PLA)'을 조직해 고교생들의 순결서약운동을 펼쳤고, 남침례교회 등 보수적 단체들까지 여기에 합세해 현재는 미국 고교생의 약 10%가 서약을 했을 정도다.

버지니아 페어팩스고의 한 여학생은 "굳이 자신이 처녀라는 사실을 자랑삼아 말하지도 않지만, 반대로 자신이 섹스를 했다는 것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교실 분위기"라며 "미프로농구(NBA) 스타인 그린(올해 초 38세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유지한 것으로 유명)의 사진을 보란 듯이 공책 표지에 끼워넣고 다니는 학생도 있고 보면 결국은 순결 중시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뉴스위크지도 최근호에서 '미국 고교생의 순결이 늘고 있다'는 대대적인 특집기사를 통해 "옛날로 회귀했다거나 학생들이 착해졌다기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줄 아는 현명함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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