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지옥훈련 '공포의 아마' 미포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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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이번 승리로 한을 풀었다고 봅니다. 이젠 좀더 자신감 있게 경기에 나서겠죠."

1일 남해 공설운동장에서 만난 현대 미포조선 조동현(51)감독의 목소리는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상기돼 있었다.

프로팀에서 쫓겨났거나 프로로 진출하지 못한 무명 선수들을 이끌고 탄탄한 전력의 프로구단 안양 LG를 연장 접전 끝에 격파한 감격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양 LG는 FA(축구협회)컵 우승을 목표로 최태욱을 제외한 이영표·안드레·히카르도 등 베스트 멤버를 대부분 풀가동한 상태였기에 승리의 기쁨은 두배였다.

실업팀 현대 미포조선이 FA컵 돌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미포조선은 지난달 30일 본선 1차전에서 연장 후반 8분 김영기(29)의 골든골로 안양을 1-0으로 꺾고 16강에 합류했다.

3일 16강전에서는 올시즌 K-리그 준우승팀 울산 현대와 맞붙는다.

조감독은 "울산과의 16강전도 유상철만 잘 막으면 해볼 만하다"며 의욕을 보였다.

안양 격파의 선봉장은 공교롭게도 안양에서 쫓겨났던 수비수 이재천(25)이었다.

오른쪽 사이드에서 날아온 프리킥을 이재천이 머리로 절묘하게 패스했고, 문전으로 파고들던 스트라이커 김영기가 오른쪽 허벅지로 골문 안으로 밀어넣은 것. 김영기 역시 프로팀 수원 삼성에서 1999년 방출된 선수다.

현대 미포조선엔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가 이재천·김영기 외에도 5명이 더 있다.

조감독은 풀이 잔뜩 죽은 선수들을 하나둘씩 끌어모아 "너희들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속팀 컬러와 맞지 않아 이리로 온 것 뿐이다. 어디에서고 축구를 잘하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다"며 용기를 심어줬다.

한편으로 "이걸 참지 못하면 너희 축구인생은 끝"이라며 하루 8시간의 강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방출 7인방'은 프로팀에서 외면당한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훈련에 앞장섰고, 팀은 끈적끈적한 접착력을 더했다. 축구판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이런 독기와 화합이 98년 결성된 팀을 창단 5년 만에 실업축구 정상권에 올려놓았다. 올해도 실업리그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차례씩 거두며 상무와 함께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남해=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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