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폭되는 국정원도청 의혹]권력 핵심 등장… 청와대까지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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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청(盜聽)파문이 대선정국을 흔들고 있다. 한나라당의 1일 추가 폭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다"고 재차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즉각 '3차 폭로'의 예고로 맞받아쳐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추가 폭로한 문건은 두 가지 점에서 1차 폭로와 대비된다. 우선 정권실세들이 등장했다. 청와대와 정부 인사 20여명이 거명된다. 지난 2월 당시 청와대 박지원(朴智元)특보와 민정수석, 국방·문화·건교부 장관, 국세청장 등이다.

통화 내용도 부패사건 조사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 장군 진급과 국영기업체 임원의 인사청탁 등이다. 1차 폭로가 국정원의 도청사실에 주안점을 뒀다면, 이번엔 청와대와 정부 핵심인사들의 월권(越權)과 권력남용이 주된 내용이다.

2차 폭로를 맡은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선대위 부위원장은 "국정농단의 대표사례 모음집"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폭로한 문건에 따르면 박지원 특보는 특별검사 활동에 대한 청와대의 영향력 행사 방안을 민정수석과 논의하고, 장군 진급에 개입하고 있다. 또한 장·차관 및 청와대 수석과 검찰 인사에 관여했다고 과시한다.

나머지 장·차관이나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인사청탁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 중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권노갑(權魯甲)씨의 의중(意中)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추가 폭로로 자료의 신빙성 논란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내용이 구체적인 데다 차정일(車正一)전 특검이 청와대 이재신(李載侁)민정수석과의 통화를 시인했다고 지적한다. 한나라당 의원과 통화한 것으로 적힌 취재기자도 대화 내용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1차 폭로 직후 국정원과 청와대 일각이 "사설정보팀 작품"이라고 반박한 주장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한나라당은 지적하고 있다. '사설정보팀설'은 1차 문건 대부분이 국회 주변에서 이뤄진 전화통화인데다 지난 3월에 한정돼 있다는 게 주된 근거였다. 하지만 이번 폭로로 도청범위는 청와대와 정부기관으로, 시기는 1∼2월로 넓어졌다.

그럼에도 이들 문건이 1백% 국정원 문건임을 한나라당의 주장이 확인해 주지는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지원 실장 등 상당수 관련자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이 통화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 한나라당 의원은 통화를 인정하고 민주당 의원은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문서와 문자체가 다르다는 주장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문건의 출처를 밝히라"고 반박한 것은 이런 뜻에서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3차 폭로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2∼3일쯤 뒤 추가 폭로를 계획 중이다. 폭로공세의 완결편이라고 한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 인사들이 '노풍(盧風·노무현 바람) 띄우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문건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에선 자료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입수경위를 밝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한 이부영 의원은 "국가안위와 관련된 국기(國基)가 흔들릴 만한 큰 일이 도청돼 있다. 청와대나 국정원이 계속 부인하면 밝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의 통화 내용이냐"는 질문에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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