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법조계 '인사 퍼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새해 벽두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관심은 온통 '차기 주자'에 쏠려 있다. 법원.검찰.변호사협회 등 '법조 3륜(輪)'의 수뇌부가 대거 교체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경우 최종영 대법원장이 9월 퇴임한다. 다음달 변재승 대법관이 교체되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 6명, 내년에 5명의 대법관이 물러난다. 전체 대법관 14명 중 80% 가까이가 바뀌는 대대적인 지각변동이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2년 임기를 끝내고 4월 3일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긴다. 이 때문에 부장 검사 이상 간부들의 인사도 신임 검찰총장 취임 이후로 미뤄졌다.

6000여명의 변호사가 회원인 대한변협도 2월에 새 회장을 선출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조만간 천기흥.김성기 두 변호사 가운데 한 사람을 대한변협 회장 선거에 나갈 후보로 뽑는다.

이렇다 보니 법조타운에서는 세 사람만 모여도 귀동냥한 정보를 교환하며 후임자를 점치기에 바쁘다. 퍼즐 맞추기나 다름없다.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 자리가 갖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관은 판사들의 '꿈'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림으로써 갈등을 마무리하고 사회 통합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영어로 대법관을 'Justice'(정의)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법관은 그 권위와 무게를 인정받는다.

검찰총장은 1400여명의 검사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사정(司正)기관의 사령탑이다. 대한변협 회장은 재조(在朝) 법조계의 불공정한 법 집행을 감시하고, 잘못된 것의 시정을 요구하는 인권단체의 수장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들 법조 3륜의 수장은 권력의 남용과 오용, 이에 따른 국민 기본권의 침해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을 공통적인 임무로 하고 있다.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권력에서 한발짝 물러서 엄정함과 건전한 비판의식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후임자 논의는 이 같은 요구와 동떨어져 있다. 얼마나 공정하고 중립적인 인물인지, 법에 정통한지, 인품이 훌륭한지, 리더십이 뛰어난지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로지 정권과의 '코드'만 중시되는 양상이다.

대법관을 제청하는 데 재야 법조단체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일부 인사는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코드가 맞는 유력 인사를 찾아다닌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일부 젊은 변호사들은 "변협 회장 선거 때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표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변협 회장 선거가 보혁 대결의 결전장이 될까 걱정스럽다.

법조계 수장들의 인사가 코드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 서울고법의 한 중견 판사는 "대법관이 처리하는 사건 가운데 코드가 필요한 것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에 대한 이해와 업무처리 능력이 코드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판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권의 외압을 이겨내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인물이 검찰총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압에 맞서 '내 목을 치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드가 중시되고 구성원들이 여기에 따라 이합집산한다면 임명.선거가 끝난 뒤에도 갈등과 분열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을 수 있다.

김상우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