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 곁을 떠난 패션계 선구자 앙드레 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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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앙드레 김이 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장례식 후 생전에 그토록 흰색을 사랑했던 그답게 흰색 영구차에 실려 장지로 향했다. 고인은 일제 강점기 한복판이던 1935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자라 국내 ‘남성 패션디자이너 1호’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대한민국은 식민지·전쟁·가난으로 점철된 나라였다. 1962년 첫 국내 패션쇼, 66년 파리 에펠탑 패션쇼를 열 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선 재건복이나 간소복(簡素服) 입기 운동이 한창이었다. 패션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련이 따랐겠는가. 고인의 장인정신과 예술적 재능, 끝없는 열정이 가시밭길을 헤치고 한국 패션계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어느 분야든 선구자는 외롭다. 성공한 후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잊기 십상이다. 앙드레 김은 달랐다. 그는 평생 격조와 품위를 지키고자 했고, 자신의 작품에도 이를 구현했다. “퇴폐·펑크나 들뜨는 것은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행실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탐나도 모델로 기용하지 않았다. 옷을 통해 한국의 미(美)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고 국산 소재를 고집했다. 자선 패션쇼와 어린이 구호단체에 수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모범 납세자로 선정돼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패션모델들의 과도한 살 빼기 풍조와 부작용을 잘 알기에 몇 년 전 “너무 마른 모델은 무대에 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주한 외교사절들과의 돈독한 교류는 민간외교의 전범(典範)으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제 누가 앙드레 김의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 빈자리가 새삼 커 보인다. 당장은 ‘앙드레 김’이라는 국가적 브랜드를 계승·발전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패션계부터 나서서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것이다. 고인은 70세를 넘겨서도 “20대의 동화적인 세계, 어려서의 꿈과 환상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어제 꿈과 환상이 가득한 다른 세계로 떠났을 것이다. 고인의 격조 있는 삶과 우아한 작품 세계에 새삼 경의와 고마움을 표한다. 삼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