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배우들 노래 '양념' 영화 맛 돋우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2면

요즘 인기의 가늠자는 휴대 전화의 벨소리(수신음)·컬러링(통화연결음) 서비스. 김정은의 노래가 폭발적인 내려받기(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까지 누계가 60만여회. 김정은의 노래가 실린 OST 음반은 영화 음반으로는 드물게 2만여장이나 팔렸다. 영화 OST는 많아야 수천장에 그치는 게 상례다.

김정은은 KBS2 TV '윤도현의 러브 레터'에 출연, 노래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선희는 그를 잘 몰랐던 10대들에게 새로 알려졌고, 노래방에서도 톱 순위에 올랐다. 지상파·케이블 방송도 김정은의 뮤직 비디오를 숱하게 방영했다.

'몽정기'의 김선아도 노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교생 실습 첫날 짓궂은 중학생들의 요청에 부른 노래는 만화영화 '캔디'의 주제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를 부르는 그 앳된 표정은 폭소를 자아냈고, 영화도 개봉 3주 만에 전국 2백만명에 근접했다. '가문의 영광'처럼 휴대전화 서비스나 OST 판매, 그리고 뮤직 비디오 방영은 기본이다.

지난주 개봉한 '광복절 특사'도 예외는 아니다. 극중에서 송윤아가 부른 강애리자의 '분홍 립스틱'은 개봉 전부터 휴대전화 서비스 누계가 1만여회에 이를 정도였다. 제작진은 김상진 감독, 손무현 음악감독, 가수 김현철·박상민 등이 참여한 별도의 프로젝트 음반을 발매했고, 이 안에 송윤아의 '분홍 립스틱' 댄스 버전도 수록했다. 지난해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를 다시 유행시켰던 영화 '불후의 명작'이 요즘 개봉됐다면 주연 박중훈과 송윤아 중 한명은 마이크를 들지 않았을까.

영화의 분위기를 다듬고 색깔을 덧붙이는 요소로 사용됐던 노래가 이젠 영화를 홍보하고, 실제로 구매력을 높이는 강한 도구가 된 셈이다. 예전과 달리 배우의 서투른 목소리가 그대로 실린 OST 음반이 인기를 끌고, 인터넷·휴대전화·뮤직 비디오 등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영화 기획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지난 2년새 코미디 영화가 극장가를 장악하면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배우의 숨겨진 장기, 이른바 배우의 '망가진' 모습으로 눈길을 끌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정은 다르지만 배우들의 노래 부르기는 코미디가 아닌 영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 '연애소설'에서 손예진은 초등학생처럼 두손을 꼭잡고 들국화의 노래 '내가 찾는 아이'를 애처롭게 불렀다. 장동건은 지난주 개봉한 '해안선'에서 1960대 인기곡이었던 여운의 '과거는 흘러갔다'를 나직한 음성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 배우의 육성이 담긴 OST를 내놓은 건 물론이다. 장동건은 그가 알지 못했던 '과거는 흘러갔다'를 김기덕 감독에게 사사했다는 후문이다. 음반으론 히트하지 않았지만 '오아시스'에서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불렀던 문소리의 음성도 방송을 많이 탔다. 다음달 초 개봉할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선 주연 공효진과 조은지가 주제가 '침대 끝에서'를 부른다. 세월이 많이 흐른 히트곡을 비틀었던 여타 영화와 달리 이번엔 곡을 새로 만들어 흥행 포인트로 삼았다. 노래를 불러도 대개 대역을 썼던 예전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현상은 방송·가요·영화 등 연예인의 경계가 불문해진 요즘 세태의 반영이다. 연기자로서의 배우보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배우를 선호하는 충무로의 선택인 것이다. 휴대전화·뮤직 비디오 등 여러 통로로 영화를 알린다는 부수 효과도 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재미를 좇으려는 기획 의도 자체를 나무랄 순 없지만 스타의 명성과 화젯거리에만 의존한다면 영화의 깊이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신인 가수 비가 내년 추석께 개봉할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주인공 최배달 역에 낙점된 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연기력이 검증 안된 그가 제작비 40억원 규모의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또 귀여운 얼굴의 가수 장나라는 3억원의 출연료를 받고 신작 '오! 해피데이'를 찍고 있다.

배우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한국 영화의 주연들이 노래 경연을 벌이고 있다. 물론 영화 안에서다. 반응도 좋은 편이다. 아니,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연기·음악·미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노래를 분리해 말한다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요즘 많은 한국 영화 속의 노래는 배우 한 명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고, 일종의 유행 비슷하게 번지고 있어 특이하다.

최근 관객 5백만명을 동원하며 올 최고의 성공작으로 떠오른 코미디 영화 '가문의 영광'.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여주인공 김정은이다. 그가 옛 여인을 따라 발길을 돌리는 애인 정준호를 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른 '나 항상 그대를'이 요즘 대단한 인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