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성관계 후 정액에 피가 섞여있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정택 한의사

회사원 L씨(39)는 얼마 전 성관계를 맺은 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정하고 나서 콘돔을 버리려는데 적갈색의 피가 실처럼 정액 안에 퍼져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L씨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30대 초반에 1~2년 사이에 몇 번 그러더니 그 후부터는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좀 걱정이 됐지만 딱히 큰 병이 아니라니까 그냥 지나갔었는데, 이번에는 좀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 초부터 자꾸 회음부와 고환 부위가 때때로 찌르는 듯이 아픈 증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변이 시원치 않거나 어떤 부분이 계속 아픈 건 아니었지만 안 그래도 찜찜한 상태에서 정액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경험을 또 하게 되니 당혹스럽고 심란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몸에서 피가 날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당혹감을 느낀다. 다치거나 베였을 때 상처가 어디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을 때에도 심란한데, 어디에서 출혈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를 보게 되면 더 당황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소변과 대변에 피가 섞일 때에 주로 그런데, 남성의 경우 생리적으로 가장 큰 쾌감을 느껴야 할 사정의 순간에 정액에 피가 섞인다면 누구라도 가슴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할 것이다. 이른바 혈정액이다.

혈정액은 그 증상 자체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 많은 경우 정낭의 점막이 비후해진 상태에서 일과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다만 일정 기간 내에 혈정액 증상이 반복되면서 다른 불쾌한 증상까지 겸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전립선, 정낭, 부고환, 사정관과 요도 등 정액이 통과하는 모든 부분이 혈정액의 출혈 부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혈정액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후보 질환도 다양한 편이다.

반복적인 혈정액은 보통 정낭, 전립선, 부고환의 만성 염증에서 비롯된다. 염증으로 점막 조직이 손상되어 간헐적으로 출혈이 일어나게 된다. 보통은 주변 부위의 통증이나 불쾌감, 혹은 소변이 시원치 않은 증상을 겸하게 된다. 전립선과 주변조직이 석회화되어 결석이 침착된 경우 역시 혈정액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찌르는 듯한 통증이 불규칙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간혹 전립선암이나 결핵으로 인한 혈정액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빈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한의학에서 혈정액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로 하초습열(下焦濕熱)이 심한 경우인데, 이는 전립선이나 정낭에 발생한 감염성 혹은 비특이성 염증을 의미하며 보통 주변 부위의 통증 및 불쾌감을 동반한다. 이때는 청열소종(淸熱消腫)의 원칙으로 염증을 해소하고 조직 손상을 방지하여 출혈을 막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기허불섭혈(氣虛不攝血)인데, 특별한 외부 자극 없이도 점막이 쉽게 손상되어 출혈이 일어나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경우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평소 괜찮다가도 피로가 심할 때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이 경우 보기섭혈(補氣攝血)의 원칙으로 접근하여 점막조직을 강화하고 손상된 조직이 빠른 시간 안에 복구될 수 있도록 돕는다.
세 번째로는 임병(淋病) 중 석림(石淋)에 해당하는 질환군 중 전립선 결석으로 인한 혈정액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때 통기배석(通氣排石)의 원리로 결석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간 뒤 배설을 도와 출혈의 원인을 없애고, 나아가 결석으로 인한 상처 조직을 신속히 회복하는 것이 치료 원칙이다.

혈정액은 대개는 남성 건강을 크게 위협하지는 않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자꾸 반복된다면 단순한 피로 때문에 발생하는 일회성 증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아서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걱정은 작게, 치료는 신속하게’혈정액을 대처하는 바른 모습이라 하겠다.

한의사 이정택

이전 칼럼 보기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