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고 출신 총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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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30면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쳇말로 ‘농고 출신’이다. 인터넷상의 그의 이름에는 ‘학력’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다닌다. 그의 학력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뜻일 거다. 큰 체구와 잘생긴 외모에 농고 출신이라는 배경은 뚝심 있고 호감을 주는 강한 한국 남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농부의 아들, 농대 진학이라는 이력은 청소년 시절의 꿈과 정서를 짐작하게 한다. “농부가 되려던 사람이 재상이 됐구나. 얼마나 노력했고, 의지는 얼마나 강할까.”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김 후보자는 정치인으로서 강인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흔히 얘기하는 학력 핸디캡(?)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인물이다. 세계적 기업가인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학을 중퇴했다. 그렇지만 그의 학력이 그에게 주는 이미지는 자신의 소신이 강하며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대중음악을 선물한 국민적 가수인 서태지는 공업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고교 졸업장이 없다고 해서 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서태지를 음악에 모든 것을 건 가수, 자신의 색이 확실한 용기 있는 가수로 기억한다. 이렇듯 약점이 될 수도 있는 학력이라고 해도 실력을 갖추면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강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학력 위조라는 말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을 장식한다. 학력은 평생 가지고 다녀야 할 자신의 이미지다. 개인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자칫 실수를 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학력 위조로 물의를 일으켰던 신정아씨를 검색해 보면 인물 정보에 아직도 ‘전 대학교수’라고 돼 있다. 2007년 신정아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학력 위조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그런데 아직도 학력 위조로 자신을 분식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유명한 모 강사는 해외에 세미나를 다녀오고 나서 외국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모씨는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유명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대중에게 자신을 부끄럼 없이 소개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학력을 위조하는 사람들은 부족한 실력을 포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기에 학력으로만 위조하고 포장하는 것은 난센스다.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멋진 학력이 필요하다면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공부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사실 학력은 좋고 나쁨으로 나눌 문제가 아니다. 학력은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에게 학력은 이미지 전략 중의 하나로 활용되기도 한다. 최근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인 대중가수 타블로가 그런 예다. 스탠퍼드대학 창작문예 학사, 동대학원 영문학 석사 과정 수석 졸업이라는 그의 학력은 인기 가수가 되는 데 긍정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력이 모든 것을 말하는 시대가 아니다. 학자가 학문의 깊이를 위해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나 연예인의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이 현장으로 바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학력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따라오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남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강하게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때로는 사회 통념상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는 학력이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같은 학력이라도 그 사람의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이제 ‘학력의 우상(偶像)’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대한민국은 상고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다.


허은아 글로벌 이미지 전략가로, 고객 만족형 서비스 교육업체인 ㈜예라고의 대표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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