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럴 거면 왜 수사하고 재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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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3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광복절 특별사면 내용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보도자료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그간의 보도를 공식 확인하는 자리에 그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맥빠진 분위기였다.

이 장관이 자리를 뜬 뒤 최교일 검찰국장의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사면 대상자의 선정 기준은 뭡니까.”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는 왜 포함된 겁니까.” 최 국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답변을 서둘러 마쳤다.

정부는 사면 때마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워 왔다. 이번 광복절 사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번 사면은 사회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는 ‘법치주의 훼손’ 논란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면 내용을 접한 법조계 인사들은 “이러려면 왜 수사를 하고 재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깊은 상실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그 범죄가 국민에게 미친 영향까지 고려해 형을 선고했는데, 대규모 사면이 이를 한꺼번에 무력화시키는 것 같아 힘이 빠진다”고 했다. 한 검사도 “밤새우며 수사한 비리 정치인들이 사면으로 손쉽게 풀려나는 걸 보면 허탈하고, 헛고생을 했다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자연히 눈길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국장에게로 향한다. 이 두 사람이 사면의 주무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면을 보면 이들이 과연 법조계와 검찰 내부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의문이 든다. “사면 내용이 계속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우린 말 못한다’면서 보안에만 급급하며, 대통령 눈치나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고개를 들고 있다.

법무부 측의 해명은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우리로선 실무작업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 출신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고, 검사장급 검사가 검찰국장을 맡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의 가장 큰 책무가 ‘정의 수호’라는 점에서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는 정치논리에 맞서 법 원칙을 지키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국무위원으로서, 소관 부처 장관으로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하고 설득할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이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검찰의 후배들은 묻고 있다.

최선욱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