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마케팅 이색 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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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는 고객이 아니라 술집 마담이 골라준다.'

한국에서는 이런 말이 통한다. 아니 정설에 가깝다.

그 비싼 위스키를 고객이 맛을 알아 골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술집 마담이 권하는 대로 마신다는 뜻이다.

최종 소비자의 선택ㆍ발언권 보다 술집 마담의 추천권이 더 강세다.

한번쯤 룸싸롱에 들러본 사람이면 이런 분위기를 대체로 다 안다. 좀 싼 양주를 마셔볼까 하고 주문하면 '없다''떨어졌다'는 대답이 나오고 마담은 얼른 비싼 양주를 권하기 마련이다. 속이 쓰리지만 체면도 있고'후속' 분위기를 망칠세라 그대로 시킨다. 접대하는 술자리면 더더욱 그렇다.

위스키 마케팅이 고객보다는 유흥업소 마담ㆍ종업원 위주로 이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롯데칠성의 위스키 스카치블루는 1997년 말 출시됐다. 스카치블루는 출시 5년째인 올해 월별 출고량에서 한때 3위에 랭크됐다.

그 돌풍의 비결은 다름 아닌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상대로 한 이른바 '감동마케팅'이다. 진입 초기 국내 위스키 시장장벽은 너무나 높고 두터웠다. 임페리얼ㆍ윈저ㆍ딤플 등 내로라 하는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롯데가 새로 술 시장에 진입하면서 내놓은 첫 상품이 제대로 먹힐 리 만무였다. 상품의 인지도도 낮았지만 음료전문회사라는 회사의 위상도 걸림돌이었다.

스카치블루 판매 사원들은 그래서 특히 서울 강남의 대형업소 마담ㆍ웨이터들에 빌고 또 빌었다. 오후 5시쯤이면 아예 이들 업소로 출근했다. 테이블 정리도 해줬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서슴없이 해줬다.

이쯤 되니 마담ㆍ웨이터들이 스카치블루를 고객들에 권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맛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는 평가여서 그 후 판매는 순풍에 돛단 격이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3개월여 이런 마케팅을 계속하자 유흥업소 직원들 사이에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도 이 마케팅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스키의 판매량은 술집 마담들의 혀끝에서 논다고 했다. 내로라 하는 위스키 메이커들은 새 제품을 출시할 때는 으레 마담들을 호텔로 불러 시음회를 갖기도 한다.

올 겨울 위스키 마케팅도 같은 추세다. 메이커들은 서울 강남의 룸싸롱 등 대형업소를 상대로 읍소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선도 겹쳐 있어 위스키 소비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신제품도 두 가지나 나와 있어 마케팅은 더 치열하다.

유흥업소 종업원을 상대로 한 축구대회가 열리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달 26일 2003 윈저컵 전국축구대회를 열었다. 전국 유흥업소 종사자 1백92개 팀 2천8백80여명이 참가했다. 지역ㆍ조별 리그를 벌여 24개 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내년 3월말 서울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에서 우승을 겨루게 된다.

하이스코트는 연말까지 업소 도우미 행사를 한다. 수도권과 전국 6대 도시에서 80개 팀이 업소를 직접 방문, 홍보한다.

물론 소비자를 겨냥한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치는 회사도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시바스 리갈18년산 마케팅의 격을 높이고 있다. 명품 이미지에 맞는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병마다 고유번호를 매겼다. 선택된 소수의 소비자들에 공급되는 명품 위스키의 의미를 고객들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조용현 jowas@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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