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 13억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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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이승엽(삼성)이 한시즌에 때리는 홈런보다도 적은 34개의 홈런을 때렸다.

'3할'은 한번도 못쳤다. 정수근(두산)처럼 빠른 발을 가진 것도 아니고 박진만(현대)처럼 수비의 귀재도 아니다. 그렇다고 승패를 손에 들고 좌지우지하는 선발투수도 아니다. 남들처럼 화려한 별명도 얻지 못했다. 그저 눈이 작아 '단추'라고 부르는 동료들이 몇 있을 뿐이다.

이처럼 '그저 그런' 그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18일 LG와 4년 동안 총액 13억원(계약금 5억원·연봉 6억원·옵션 2억원)에 팀에 남기로 결정한 이종열(29)이 그 주인공이다. 지루하지 않은 꾸준함. 토끼를 따라잡은 거북이. '슬로 앤드 스테디 윈즈 더 레이스(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등 '늦어도 황소걸음'식의 표현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들이다.

11년 전 겨울 이종열은 철저한 무명이었다. 그가 다녔던 장충고는 뚜렷한 성적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서울시내 내야수 랭킹에도 꼽히지 못했다. 청소년대표 이우수(은퇴·당시 동대문상고)가 서울연고 유격수 첫 손에 꼽혔다.

이종열은 당시 LG 이한구 스카우트 부장의 눈에 띄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계약금·연봉 각 9백만원. 말이 좋아 프로지 오라는 대학이 없어서였다는 게 더 맞다. 이부장은 프로야구 연습생 신화의 원조 장종훈(한화)을 발굴한 주인공. 운명의 끈을 찾으라면 그 정도였다. 장종훈을 만든 스카우트를 통해 프로에 뛰어들었다는 것.

처음 2년 동안은 잠실구장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1군은 백인천 감독의 눈에 띈 이우수의 차지였다. 그러나 이종열의 트레이드마크가 뭔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성실함. 그것 하나로 버텼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 기회는 왔다. 주어진 기회마다 제몫을 했다. 그러다보니 꼭 필요한 선수가 됐다. 팀에서는 누구나 "종열이가 속썩이는 것은 한번도 못봤다"고 말한다.

11년 만에 올스타전에 나갔다. 팀도 한국시리즈까지 갔다. 그리고 자유계약선수가 돼 입단 때 받았던 돈의 1백50배에 가까운 돈을 손에 쥐게 됐다.

이종열의 성공기는 프로야구의 새로운 한 페이지다. '천재'가 아니어도 꾸준한 자기관리로 충분히 '엘도라도'를 밟을 수 있다는.

이태일 기자

pinetar@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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