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과 중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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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9일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간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 대북 중유제공 중단 여부를 놓고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북핵 개발 폐기를 위해 국제사회의 빈틈없는 공조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혼선이 예상될 수도 있다. 지금 11월 제공분 중유를 실은 선박이 북한의 원산항을 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4일 뉴욕에서 열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는 중유 제공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한·미·일 3국은 정상회담과 각급 회의를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누차 강조해 왔다. 중유 지원 즉각 중단은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뜻함과 동시에 평화적 해결보다는 강압적 제재에 가까운 수단이다. 반면 중유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 중단시 실질적인 경제제재의 효과가 크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북한이 극단적인 '고백'외교까지 동원해 생존과 자주권에 집착하는 만큼 한·미·일 3국도 평화적 해결 방안에 공감대를 넓히는 데 좀 더 진력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대안의 하나는 농축 우라늄 핵개발 폐기를 위한 북한의 조치에 잠정적 시한(時限)을 못박고 이에 따라 중유 제공 일시 중단이나 완전 중지를 포함한 행동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의 이런 노력은 우방들이 함께 만들어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적 조치(roadmap)의 일부분이 돼야 할 것이다.

현재 표출되고 있는 한·미·일 간의 입장 차이는 북핵 폐기라는 공통의 목표를 놓고 현실적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다. 북한이 현재의 긴박한 상황을 말장난으로 회피하려 든다면 오판의 대가는 북측이 치르게 될 것이다. 현재 논란 중인 중유 문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첫 단계일 뿐이란 사실을 북한은 직시해야 한다. 북한이 할 일은 미국의 단호한 응징에 한·일 양국이 균형을 가할 수 있는 명분으로 활용할 가시적 조치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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