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론 가능… 실속은 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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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계적인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올 무역 흑자가 예상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문제가 많다.

전문가들은 ▶특정 품목에의 수출 의존도가 심하고▶수입도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등 취약한 구조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국환 산업자원부장관은 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올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1백1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올 초 정부가 잡았던 무역수지 흑자 목표치(70억달러)보다 5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는 93억달러였다.

정부의 이런 무역 흑자 목표치 수정은 최근의 수출 호조에 근거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두자릿수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지난달(증가율 25.9%)에는 수출증가율이 25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런 수출 증가세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점도 적지않다. 우선 특정 품목의 수출 의존도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반도체와 무선통신기기 등 전자·전기 제품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6%에서 올해 40%로 늘었다.

반면 중소업체들이 대부분인 경공업제품의 수출 비중은 지난해 16%에서 올해는 15%로 오히려 줄었다.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섬유 산업의 경우 최근 수출이 감소세로까지 돌아섰다.

산자부 관계자는 "수출이 수치상으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대기업 제품에 국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입 구조도 나빠지고 있다.

10월 소비재 수입은 지난해보다 24%나 늘었다. 특히 화장품(18.4%)·의류(47.9%)·캠코더(89.1%)·골프채(40.5%) 등 고가 외제품의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고질적인 대일 무역 적자 폭도 계속 늘고 있다. 대일 수입은 지난 10월 17.4% 증가해 올 들어서만 대일 무역 적자 누계가 1백18억8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와 관련, 신국환 장관은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근원적인 대비책을 마련 중이며 특히 기계 및 부품소재 분야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작업을 정부가 곧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자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대중국 수출 증가율이 70%에 이르고 있다"며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대중국 수출이 급신장하고 있어 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지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hodo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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