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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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당신에게 처참하게 고문 당하고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간다. 이러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원통하다. 더구나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분노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한스럽다. 이 저주받을 인간들이, 악마 같은 자들이….'

재야출신 김근태(金槿泰·56·민주당)의원이 1985년 9월 반정부·반체제 운동 혐의로 붙잡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0일간 온갖 고문을 당하고 떠나던 날, 자신을 고문한 경찰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속으로 울었던 바로 그 심경이다.

고문은 이처럼 인간을 파괴한다. 金의원에게 고문경찰은 악마다. 원래 고문은 정상적인 인간 사이에서 저질러지던 일이 아니었다. 힘을 지닌 인간이 자신과 부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인간 아닌 인간, 주로 노예에게 행하던 잔혹행위였다.

고문은 기원전 1천3백여년 고대 이집트왕 람세스 2세가 포로를 취조하던 기록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 됐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광범하게 고문이 사용된 것은 로마 시대. 로마인들은 노예를 법정에 세우기 전에 먼저 고문을 했다. 비천한 노예를 신성한 법정에 세우기 전에 지옥의 고통으로 씻어내는 일종의 제의(祭儀)였다.

인류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고문은 중세 유럽의 무고한 여인 1백만명을 태워 죽인 마녀사냥이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갑작스러운 우박이 쏟아져도 그 원인을 마녀에게서 찾고자 했고, 마녀로 고발당한 여인은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면 화형에 처해졌다.

마녀가 끊임없이 양산된 것은 가혹한 고문 탓이다. 마녀로 지목된 여인은 고문을 통해 마녀임을 자백하고, 이어 동료 마녀를 지목하고서야 화형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의 근거는 '유죄 추정'이다. 피고인은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유죄로 간주돼 벌을 받아야 하며, 죄인이기에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의무가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현대국가는 모두 '무죄 추정의 원칙'을 택하고 있다. 확정판결 이전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기에 죄를 고백할 의무가 없으며, 강요된 자백은 증거로 인정되지 못한다. 고문을 막기 위한 장치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엔 고문이 남아 있다. 조폭(組暴)이기에 유죄일 것이란 유죄 추정의 심경과 함께. 그러나 확정판결이 없었기에 죽은 자는 영원히 무죄다.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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