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인권=노벨상'이미지 훼손 장관·총장 불명예 동반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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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4일 검찰청사 내에서 발생한 피의자 구타 사망 사건과 관련, 김정길 법무부 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의 사표를 모두 수리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의 성격이 있다.

金대통령은 인권신장을 '국민의 정부'의 주요 성과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국제적으로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정치지도자로 돼 있다. 그런 마당에 다른 곳도 아닌 검찰청사에서 검찰 수사관들에게 폭행당해 피의자가 숨지는 공권력에 의한 명백한 인권침해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민의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면서 "인권을 지켜야 할 검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고 침통하고 우울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공격도 부담이 됐다.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이 4일 이들의 사의 표명을 암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계속 여론의 뭇매를 맞아 밀려서 경질하는 모양새보다는 '책임질 것은 책임진다'는 모습이 사태의 조기수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런 청와대의 뜻이 전해지면서 李총장은 4일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검찰의 최고책임자로서 마땅히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다. 李총장은 5일부터는 연가를 내고 검찰청사에 출근하지 않아 사퇴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임기가 보장된 총장이 물러서는 마당이니 법무부 장관도 물러서는 게 좋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됐다.

또 金대통령이 5일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해 유감이나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는 시기적 필요성도 작용했다고 한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조차 4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상황이어서 시간 여유도 없었다.

문제는 새로 임명할 법무부 장관과 총장감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임기말이란 점과 정치권의 민감한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1백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검찰총장은 임기제여서 이번에 임명되는 사람은 새 정권 들어서도 1년8개월여 더 재임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 거부하는 인사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또 구타 사망 사건 발생 후 정당마다 문책을 요구하는 대상이 다를 정도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민감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법무부 장관 해임을, 민주당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해임을 촉구했었다.

당장 한나라당은 "후임 인선은 선거중립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선을 관리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청와대는 후임 인선 기준을 정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모두 비호남 인사를 임명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김종혁 기자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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