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덤을 낼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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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제7보

(93~111)=94로 끊자 또 두점이 잡혔다. 앞서 잡힌 두점까지 흑 넉점이 백의 수중에 떨어졌다. 집으로 따진다면 그리 큰 출혈은 아니다. 그러나 쪼들리는 흑에겐 이 출혈이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있다.

검토실에 "이창호가 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지난 10여년간 쌓인 李9단의 권위는 패배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나이 어린 외국의 신예기사에게 진다는 것은 구경꾼의 정서에 영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세계 최강자라 하더라도 단 한판을 이기기 위해서는 뼈를 깎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찾아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바둑계에 절대권력자는 사라졌다. 도산검림(刀山劍林)의 승부세계에서 이창호 같은 강자라 하더라도 삐끗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전보에서 등장했던 李9단의 방심을 꿰뚫은 胡7단의 묘수 한방이 지금 李9단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103에 이르러 중앙 흑대마는 거의 사는 모습이 됐다. 그러나 이 대마는 아직 1백% 완생은 아니며 결국 이점이 훗날 李9단의 발목을 잡게 된다.

104로 붙여 108까지 돌파한 것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백의 노림수. 그러나 109, 111로 중앙 백 두점이 잡히기 때문에 소득은 불분명하다고 한다. 귀의 흑집이 10여집 무너졌지만 중앙 두점도 백의 세력을 무너뜨리면서 잡은 것이기에 10집은 강하다. 또 이 바람에 백은 시급히 A에 지켜야 한다. 흑이 도저히 덤을 낼 수 없다는 결론 속에서 바둑은 최종 라운드로 접어들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협찬: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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