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의 '궁합'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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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무리 따져봐도 궁합(chemistry)이 잘 맞는 사이가 아니다.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워싱턴의 첫 대면 때부터 둘의 관계는 서먹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공부할 틈도 없이 金대통령을 만났다. 햇볕정책의 합당성을 설득하려던 金대통령은 부시의 고압적 자세가 불만스러웠다. 또 선임자가 북한에 계속 끌려다녔다는 인상만 갖고 있던 부시에겐 포용에 집착하는 金대통령의 대북 해법이 영 미덥지 않았다. 이후 두 정상간엔 신뢰가 쌓이지 못했다.

정상회담은 실무자들간의 합의 도출이 어려운 문제를 지도자들이 만나 풀어갈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러기엔 한·미 정상들의 철학이 너무 다르다. 북한 체제를 보는 눈이나 김정일(金正日)을 보는 시각부터 다르다.

부시 대통령의 '악(惡)의 축' 발언도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부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대통령 등쌀(?)에 백악관 내 성경 공부 모임까지 생겼다. 이 정도라면 인민을 굶겨가며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대를 곱게 보아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햇볕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金대통령의 자신감은 남의 말 듣기를 거북해 하는 부시에겐 안 통한다.

金대통령의 북한 이해와 햇볕정책은 웬만한 말싸움에는 지지 않을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다. 金대통령에게 있어 북한의 도발이나 나라 안팎의 비난은 사탄의 시험일 뿐이다. 감옥 안에서도 북한 김일성(金日成)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수없이 그려보며 준비했던 대통령이다. 실제 부시와 金대통령 두 사람의 사주(四柱)는 굽히지 않고 팽팽히 대립하는 형상이다. 이런 궁합 풀이를 무시하더라도 애초 세상 보는 눈이 다른 두 사람의 대북 접근법이 쉽게 투합될 리 만무다.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이 金대통령을 정계의 대선배로 대접하며 말하기 즐겨하는 상대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양보했던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핵무기 개발까지 시인하며 등을 벽에 붙이고 미국과 맞서겠다는 북한이기에 이번 사태가 한두 달 안에 끝나진 않을 것 같다. 결국 우리의 다음 정권이 풀어야 할 문제다.

2년 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조용한 한반도를 위해서라도 부시란 인물 다루는 법을 누군가 챙겨봐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목매단 북한에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웬 궁합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양국 관계가 지도자들의 인간적 유대에 뒷받침될 수 있다면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다. 과거 전두환(全斗煥)대통령과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의 관계가 그랬다. 지난 7월 유민(維民)재단 강연을 위해 방한했던 나카소네 전 총리는 사전 예고도 없이 불쑥 全대통령을 찾았다. 그만큼 인간적으로 가까웠다. 또 과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와의 관계는 '론-야스' 이름을 부를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다.

적어도 2년간 남북한과 미국이 만들어 갈 삼각(三角)게임은 김정일(金正日)과 부시란 두 인물에 우리의 새 대통령이 더해진 구도로 전개된다. 유감스럽게도 북·미 양국 지도자의 성품은 벼랑 끝을 향하듯 막무가내다. 하지만 삼각관계의 윤활유가 될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란 대안이 남아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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