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view &

대기업이 먼저 변해야 반기업 정서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기업들은 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내지 못해 사람을 해고하고, 월급을 깎고, 세금은커녕 공적자금으로 연명하고, 소비자들이 원하지도 않는 물건을 만들어 강매하는 기업들은 반사회적 기업이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자선사업을 하고 기부금을 내는 행위는 기업의 책임인가. 이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행위는 기업의 의무나 책임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기업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협력과 지지를 받는 것은 기업의 수익성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좋은 경영전략이고 사회적 투자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그동안 행한 수많은 좋은 일과 경제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요즘 다시 여론과 정치권의 비판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의 사회적 투자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자기 기업과 거래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불공평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좋은 이웃이 될 수는 없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임직원들이 봉사활동을 한다고 해서 기업이 신뢰 받고 존경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열 번을 잘해도 한 번의 실수와 부정적 보도로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여론과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억울할 것이다. 불법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유지돼 온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고 약자를 착취한 것으로 매도되는 것이 서운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의 광장에서는 사실보다 정서가 더 중요하다. 불법행위를 한 것이 아닌데 왜 비난받아야 하느냐는 항변은 소용이 없다. 돈 많이 벌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한턱 내야 하고, 가진 사람이 더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정서다. 또 대기업에는 준법 이상의 도덕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여론이다. 옳든 그르든 이것이 대한민국의 기업환경이다.

환경에 적응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것이다. 기업은 진화하는 존재다. 환경에 부단히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계속 변신해야 한다. 경쟁력만으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점점 착한 기업에 유리한 기업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착한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것이다. 이것도 시장 기능이고 시장의 흐름이다. 그렇다고 착하게 살 것을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강요된 상생협력은 상생협력이 아니다. 한쪽의 호의와 양보를 전제로 하는 상생협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대기업과 협력기업 간의 잉여 배분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노사 간 임금협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얻는 것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치권이 상생협력 방안을 제도화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검토 끝에 자율협약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기업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대기업들이 좋은 이웃이 되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게 된다면 대기업을 때려 반사이익을 보려는 세력도 사라지고, 진정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