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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도청 논란]"국정원, 美製장비로 음성데이터 암호 해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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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청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여기엔 한나라당과 국정원의 상호 불신이 깊게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국정원에서 유선전화는 물론 휴대전화까지 도청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단순한 정치 공세 차원은 아닌 것 같다. 당직자와 의원들은 일상 활동에서 도청을 의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이회창(李會昌)대통령후보는 비화기(秘話機)가 달린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했다. 과거엔 "국내에서 사용 중인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휴대전화는 음성데이터를 42비트(2의 42제곱)로 암호화하기 때문에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정보통신부 등의 설명을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의원 등이 2000년 국정감사에서 "미국 CCS 인터내셔널사가 33만5천달러짜리 CDMA 휴대전화 도·감청 장비를 개발, 판매를 목적으로 국내 보안업체와 접촉했다"고 공개하면서부터 당국의 설명을 믿지 않고 있다.

당시 金의원은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휴대전화에 입력한 단말기 제조번호(ESN)와 가입자번호(MIN)를 알면 암호를 풀 수 있어 감청이 가능하다"고 지적했고 정부 측도 "이론적으론 맞다"고 시인했다. 金의원은 이 회사가 만든 디지털 휴대전화 감청장비 카탈로그까지 공개했었다.

문제는 이 같은 감청 장비를 정부가 실제로 구입했느냐다. 동아일보는 25일자에 "CCS 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G-COM사의 CDMA 감청 장비를 국가정보원에서 다량 구입했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G-COM 2056CDMA'란 감청 장비는 전화번호를 최대 1천개까지 미리 입력할 수 있으며 동시에 64채널까지 감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의원은 25일 "95년 김기섭(金己燮)씨가 안기부 기조실장일 때 처음으로 아날로그식 휴대전화 감청 장비가 국내 도입됐으며, 지금은 검찰이 마약수사 목적으로 CDMA 감청 장비를 도입·운용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당 관계자는 "휴대전화 감청 장비는 서류가방 정도의 크기로 외관상 노트북 PC와 유사하다"며 "미리 번호를 입력해놓은 휴대전화가 발신·수신될 경우 자동적으로 대화 내용을 감청하고 암호화된 형태로 국정원 해당부서에 전송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감청 반경은 보통 1㎞ 정도이나 통화량이 많은 대도시에선 5백m 정도로 줄어들고, 반면 시골에선 5㎞ 이상도 가능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국정원 도·감청 담당부서에선 자료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단말기에 도청한 대화 내용이 뜨더라도 이를 프린트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 돼있으며, 다만 이를 요약 정리해 리포트 형태로 상부에 보고한다"고 소개했다. 때문에 국정원에 녹취록 형태의 '도·감청 자료'는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도청 대상은 정치권을 비롯해 관계·재계·언론계 등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청와대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과 요시다 다케시(吉田猛)신일본산업 사장, 한화 김승연(金昇淵)회장과 청와대 김현섭(金賢燮)민정비서관 간의 통화 내용을 국정원의 도청 자료라며 공개했었다. 鄭의원이 보유 중이라는 '국정원 도·감청 자료'엔 민주당 최고위원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의 대화 내용이 숱하게 있다고 한다. 鄭의원은 지난해 3월에 있었던 한나라당 모 의원과 정치부 기자 간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24일 공개하기도 했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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