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우파 포퓰리즘 해보자” … 친서민에 빠진 한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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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제 살리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국민적 요구 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4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한 얘기다. 여권 사람들 모두 지금 ‘친(親)서민’을 외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난달 30일 홍준표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발족한 서민정책특위다. 홍 위원장은 평소 “우파 포퓰리즘이라도 한번 해 보자”고 말해왔다. 그래선지 서민정책특위를 매머드급으로 꾸렸다. 문제는 누가 서민인지 개념 정립이 모호하다는 거다. 5일 회의에서 오간 얘기다.

▶배일도 서민일자리대책 소위원장=“ 서민을 누구로 할 것이냐가 명확히 정립돼야 한다.”

▶홍 위원장=“별 거 없다. 못사는 사람들이 다 서민이지 뭐.”

▶배 소위원장=“통계론 한 80% 이상 되겠다.”

이 얘기대로라면 국민의 80%를 위하는 정책이 친서민정책인 셈이다. 노무현 정부 때의 2:8 갈라치기를 연상시킨다. 대기업·중소기업관도 유사하다. 김성식 서민정책특위 소위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자발적인 관행 만들기가 잘 안 되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부자=악’ ‘중소기업=서민=선’이란 인식이 드러난다.

실현성도 논란거리다. 서민정책특위에선 0~6세 아동 양육비로 10만~50만원을 지급하고, 쌀값 80㎏에 13만8000원이던 걸 15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1인당 1만1000만원 내면 해결된다는 무상의료 주장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주광덕 의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답이 없다.

한나라당은 박희태 국회의장이 당 대표였던 지난해 6월에도 ‘친서민’을 내걸고 ‘빈곤 없는 나라 만드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초선의원 76명이 참여하고 중진의원 16명이 고문을 맡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그러나 반영된 정책은 거의 없다. 당 관계자는 “재정이 문제였다”고 토로했다.

특히 당 내부에선 정책위와 서민정책특위 간 혼선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내부적으론 “서민정책특위가 현장 목소리를 들으면 정책위가 정부와 협의해 반영한다”(정책위 관계자)고 조율됐다고 한다. 그러나 홍준표 위원장은 “(서민정책특위가 만든) 정책을 집행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공무원을 문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책 집행까지 요구하겠다는 얘기다. 당정협의를 해야 할 정부로선 정책위를 상대할지, 서민정책특위를 상대할지 모를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친서민이 포퓰리즘이 돼선 안 된다는 건 대전제”라며 “재정으로 지속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상자를 좁게, 또 확실히 지원하는 정책이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은 정책을 쏟아내는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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