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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음악제와 ‘수인번호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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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7회째인 음악제는 전용 음악당인 알펜시아 콘서트홀까지 갖춰 예년보다 한층 격조 있는 모양새와 품격은 물론 그 프로그램의 내용도 다채로웠다. 콘서트홀 안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만석(滿席)이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하는 음악제가 만석이라니. 대관령국제음악제는 그 하나만으로도 성공한 거다.

# 음악은 음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삶을 관통할 때 음악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이끌어온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인 강효 예술감독은 올해의 주제를 ‘창조와 재창조(Create & Recreate)’로 정했다. 이미 창조된 곡의 영향으로 새롭게 재창조된 작품을 소개하고 연주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 같았다. 사실 모든 창조는 고통을 수반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 그리고 재창조란 그 고통 속에서 잉태된 불행을 딛고 넘어선 행복의 순환과 다르지 않다.

# 지난 7월 3일자 본란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는 ‘수인번호 33’! 자식과 동반 자살을 기도하다 자식만 죽고 자신은 살았지만 결국 살인죄를 쓰고 복역하다가 모범수로 6개월 감형을 받은 그가 감옥 문을 나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바로 그 ‘수인번호 33’ 아니 이젠 자기의 이름을 다시 갖게 된 그 사람이 출소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대관령국제음악제였다. 출소 직전 내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꿈꾸듯 말했고 나는 그것을 대관령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 뒤늦게 도착한 편지를 받고 알았다. 그런 그를 음악제 현장에서 만났다.

# 그제 음악회가 끝나고 알펜시아 콘서트홀 로비가 사람들로 북적일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간혹 음악회에서 있는 일이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상대는 곁을 떠나지 않은 채 “저어, 저어…” 하면서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마침 옆에서 대관령음악제추진위원장이기도 한 전(前) 서울대 음대 학장 신수정 선생이 출연한 음악가들과 인사를 나누러 가자며 팔을 잡아끌어 그 상태로 좀 어색하긴 했지만 내게 말을 건 사람과 헤어졌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직감으로 느꼈다. 그 사람이 바로 ‘수인번호 33’이었던 그라는 것을!

# 그가 형기를 단축해 가석방으로 출소하자마자 어떻게 대관령국제음악제까지 올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과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 친구들의 눈물겨운 우정과 돌봄에 감격하는 마음으로 음악제에 왔을지 모른다. 그는 나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나는 그냥 보통 키의 사람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항상 보이거나 나타나지는 않지만 어렵거나 곤란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돕는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를 직접 본 적도 도운 적도 없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을 뿐이다. 그가 내 칼럼을 읽고 매주 내게 보낸 10장짜리 정성 들여 쓴 편지를 읽으며 말이다. 그것뿐이다.

# 그는 나와 얼굴을 맞대고 긴 얘기 보따리를 밤새도록 풀어놓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키다리 아저씨일 뿐이니깐. 앞으로도 얼굴을 마주할 생각은 없다. 키다리 아저씨는 앞에 나서지 않는 법이니깐.

# 삶은 저마다 간단치 않다. 누구나 삶의 곡절이 있고 애환이 있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듯이, 오늘 나의 행복은 그 보복을 묵묵히 참고 견뎌내며 스스로의 삶을 각고의 노력 끝에 재창조해낸 보답일지 모른다. 나는 ‘수인번호 33’이었던 그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을 감내하고 견뎌내서 이제 다시금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행복으로 재생하고 재창조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주제가 ‘창조와 재창조’이듯이!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