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긴축재정에 등돌린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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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어느 나라에서나 좌파 정권과 기업의 사이는 좋을 리가 없다. 좌파 정권의 주된 지지기반이 노동자 계층이기 때문에 둘 사이는 크게 보아 노사관계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총선에서 독일 재계는 현 사민-녹색당의 좌파 연정(聯政)에 거의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특히 재집권에 성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좌파 연정이 초긴축 재정 운용과 사실상의 증세 등 정책기조를 확정하면서 독일 정부와 재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물론 독일 정부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는 처지다. 무엇보다 재정적자가 심각하다.

독일의 재정적자는 이미 유럽연합(EU)의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어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EU 집행위는 무려 재정적자가 3. 7%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3%를 넘는 회원국에 보내는 경고서인 이른바 '청서(靑書:블루 레터)'를 받을 판이다. EU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그간 누구보다 재정적자 상한선의 준수를 외쳐 온 독일 정부로서는 보통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니다. 재정적자를 해소하자면 긴축과 세수증대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독일 재계는 이같은 정부의 방침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독일상공회의소(DIHK)의 루트비히 게오르크 브라운 회장은 22일 "정부의 정책이 비전도 없고 전략도 없는 반 개혁적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산업연합회(BDI)의 미하엘 로고프스키 회장도 "기업들의 분위기가 거의 파국적"이라고 말했다.

독일 재계의 항의는 말뿐이 아니다. 이같은 반(反)기업적 풍토가 계속되면 기업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실제로 디벨트지는 지난 21일 독일 최대의 기계·전자회사인 지멘스와 보험·금융그룹 알리안츠가 세금부담 때문에 본사의 해외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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