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파문]日, 경수로 지원 일시 중단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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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행보가 긴박하게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측과 이 문제를 협의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서울을 거쳐 20일 도쿄(東京)를 방문, 일본 측 관리들과 대책을 숙의했다. 핵사찰 담당 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북한에 서한을 보내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편집자

◇미국-일본=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20일 일본을 방문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을 일시 중단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이에 앞서 19일 "오는 26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회담을 열고 대북 경수로 사업 일시 동결 방안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이 오는 29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북·일 국교정상화 회담에서 핵무기 개발 포기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경수로 건설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켈리 차관보는 또 이날 일본 측에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확인한 경위와 한국 정부와의 협의 내용 등을 설명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즉시 포기를 대북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한 뒤 한국·미국·일본이 긴밀히 협조해 대응책을 마련하자고 요청했다.

양측은 북한에 국제적인 압력을 넣되 대화로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 차관보는 21일에도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외상·이시바 시게루(石破茂)방위청 장관과 만나 협의를 계속할 예정이다.

후쿠다 장관은 켈리에게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 회담에서 핵개발 중지를 납치 문제와 함께 최우선 해결 과제로 삼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 고이즈미 총리는 18일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지 않는 한 국교 정상화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는 21일 다나카 히토시(田中均)외무성 아주국장을 서울에 파견해 대북 정책을 조율할 예정이다.

◇미국-중국=중국과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오는 25일 미국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루기로 했다. 양국은 이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동북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시켜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토대를 만든다는 데 합의했다.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7일 베이징을 방문한 존 볼튼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중국 외교부의 왕이(王毅)차관 등과 만나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미국은 이번 만남에서 북한 핵계획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중국에 전달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중국 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반도 비(非)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자국의 원칙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핵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특히 미국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북한을 몰아세우는 데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부의 장치웨(章啓月)대변인은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에는 중국이 동의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방법에서는 여러 부분에서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회담에서도 중국 측이 미국의 입장을 많이 경청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는 단계에는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IAEA=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둔 IAEA도 북한에 대화를 공식 제의하는 등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모하메드 엘배러데이 IAEA사무총장은 18일 현지 기자회견에서 "IAEA는 고위급 대표단을 평양에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IAEA의 방북을 수용하든, 북한 대표단이 빈을 방문하든 협상을 하자는 서한을 북한 측에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새로운 우라늄 농축계획과 IAEA 안전조치협정 이행문제를 협의하자고 북한에 제의했다"며 "북한이 조속히 핵확산금지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IAEA는 북한과 미국에 북한의 비밀 핵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제출해 주도록 요청했었다.

엘배러데이 사무총장은 이날 또 "북한 측이 새로운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해도 모든 조사를 마치는 데는 3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이 지난 10년 동안 IAEA에 보고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 양은 수g에서 수㎏에도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최소량인 8㎏의 플루토늄을 확보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얼마나 되는지는 직접 가서 조사해봐야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서울=정효식 기자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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