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파문]美, 언론보도 직전 황급히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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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 양국 정부는 17일 북한이 새로운 핵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인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급하게 서둔 인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북한의 비밀 핵개발 시인 사실을 발표한 16일 미국 국무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지난 5일 평양에서 돌아온 후 한국과 일본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특급 보안'을 신신 당부했다. 10여일이 지난 16일까지도 3개국 어디서도 비밀은 새나가지 않았다. 국무부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정교한 대응책을 마련한 후 이를 공개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미 정부는 이날 일과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오후 9시30분쯤 갑자기 이를 발표했다. 발표문 내용도 급조한 인상이 짙다.

국무부는 전국지인 USA 투데이가 17일자에 이 내용을 특종 보도한다는 사실을 입수하고, 발표를 앞당기게 됐다는 후문이다.

◇청와대=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임성준(任晟準)외교안보수석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이 문제는 반드시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무엇보다 햇볕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해온 사실이 여론에 미칠 충격과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과 국민에게 현실을 그대로 설명하고 한·미·일 공조를 통해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낙관적인 분위기도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한 것 자체가 대화로 나서겠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일본에 대해 납치를 사과했고, 최근 남북 간의 대화 태도 등으로 미뤄볼 때 핵개발 시인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외교통상부=외교부는 이번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이날 미국이 공식발표를 통해 "이번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결국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겠느냐"면서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김종혁·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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