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3信]"미국을 무너뜨리자" 집단 혈서까지 이라크 大選은 美 성토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15일 바그다드를 비롯, 전국 15개 주에서 일제히 벌어진 이라크 대통령 선거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7년 재임을 결정짓는 국민투표라기보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단독 후보로 출마한 후세인 대통령의 당락 여부는 전혀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과연 1백%의 지지율로 미국에 대항하는 이라크 국민의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에 귀추가 쏠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투표장의 모습은 이라크 정부가 공언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와는 거리가 있었다.

바그다드의 서민 거주 지구 사담시티의 라말라 중학교에 마련된 바그다드 제6투표소는 이른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인파로 북적거렸다. 동원된 30여명의 어린이가 군복과 후세인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입구에 도열해 밀려드는 유권자들을 향해 "나암 나암 사담 후세인(예스 예스 사담 후세인)"을 연호했다.

유권자들은 찬성 칸에 기표된 투표용지를 자랑스럽게 흔들어 대며 "미국을 무너뜨리자"고 소리쳤다. 가족들의 피를 모아 후세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가족 명의의 혈서를 써 가지고 나온 사람도 여럿 보였다.

노동자인 와삼 파커 자심(25)은 즉석에서 칼로 엄지손가락에 상처를 낸 뒤 투표용지의 찬성 칸에 피로 지장을 찍기도 했다.그는 "미국의 미사일을 몸으로 받아낼 각오가 돼 있다"고 부르짖었다. 선거관리 책임자인 사딕 하멜 데칸은 "후세인은 아랍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미국은 우리를 평화롭게 내버려두라"고 외쳤다.

그러나 투표소에서 선거인명부 대조작업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한사람이 표뭉치를 투표함에 집어넣는 경우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제서야 선거관리 요원이 "한장씩만 넣어라"고 제지하는 시늉만 냈다. 바그다드 시내의 다른 투표소 역시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서는 이미 투표 전날부터 빈터에 천막을 세우고 꽃과 리본 등으로 장식하는 등 후세인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바그다드=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