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영향 평가도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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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즈음은 실제 행동이야 어떻든 누구나 자연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으며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하고 있다. 비록 현행 제도가 마구잡이 개발을 억제하기에 미흡한 점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또한 보완을 거쳐 제도적으로 성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답답한 것은 이러한 평가제도가 개발사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만 주목을 할 뿐, 정작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즉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미미하다는 사실이다. 최근까지 개발사업의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한 평가는 사업계획의 수립 후 사업을 승인하는 방향에서 환경영향평가의 일부로 진행돼 왔다. 그러다 보니 동강댐 계획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댐 건설로 도로가 정비돼 교통이 편리해지고 인구와 소득도 증가할 것이라 낙관했다.

댐 건설 계획의 발표와 함께 이미 해당 지역 내에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와 농가 대출이 중지되고 농민들의 농사 의욕이 감소하며 보상을 둘러싸고 미묘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댐의 백지화가 확정되기까지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으로 피해와 고통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화호 간척사업의 경우 수많은 주민들이 익숙한 생활터전과 생계방식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강요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낯설고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물적 재산권을 중심으로 지급되는 보상금은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너무나 액수가 적었고 또한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지도 못했다. 시화호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사업 추진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새만금 사업 역시 수질과 용수 확보 문제 때문에 농사를 짓기도 어려울 땅을 농경지로 확보한다면서 어민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와 갯벌을 빼앗고 있다. 성장과정에서 낙후됐던 전북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이건 21세기에 다가올 식량안보에 대처하기 위해서건 새만금 지역은 국가에 의해 간척대상지로 선택됐다. 비록 보상금을 지급했다고는 하지만 1만5천명이 넘는 전북 어민들의 삶에 도대체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인가. 정부는 그 결과를 예상했고 또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인가.

환경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배려 없이는 환경 보호의 정당성도 실효성도 획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댐 건설을 백지화한 뒤에도 '주민의 생활'을 구실로 동강의 자연이 심하게 훼손되거나 생태계 보전지역 지정이 커다란 진통을 겪은 것 또한 환경단체나 환경부가 "사람보다도 동·식물을 더 중시한다"는 주민들간에 널리 확산된 오해나 불만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문화적 영향 평가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은 개발사업만이 아니다.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거나 환경을 보호하려는 대형사업들 또한 주민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업의 계획단계에서부터 그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나 강북 재개발 사업 등 앞으로 실시 예정인 사업들에 대해서도 그 사회문화적 영향을 평가해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자칫 그동안 발전한 생산과 금융 및 정보의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며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나 고용기회의 변화, 일상의 생활 및 움직임의 패턴 변화 등 수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동반하기도 한다.

사회문화적 영향 평가는 사업 실시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사업계획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미리 수렴해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효과도 갖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며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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