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기권 "수군수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야구대회에서 선발투수가 경기 직전 못 나온다고 하면, 그래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면 욕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대통령도 컨디션이 안좋아 국무회의를 취소한 적이 있다."

"국무회의는 대통령 없이도 얼마든지 진행되지만 전남팀은 이세돌의 기권으로 탈락했다."

이세돌3단의 기권으로 인터넷 공방이 뜨겁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7일 오후 2시. 홍익동 한국기원 1층에 마련된 바둑TV 스튜디오에선 국내 유일의 지역대항전인 KAT시스템배 한국바둑최강전 한판이 열리게 되어 있었다. 대국의 주인공은 강원팀의 김동면7단과 전남팀의 이세돌3단. 전남팀은 조훈현9단-이세돌3단의 투톱만으로도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데 이세돌3단이 나타나지 않았다. 15분이 지날 무렵 친형인 이상훈3단으로부터 "이세돌3단이 심한 몸살에 걸려 대국에 나갈 수 없다."는 전화가 왔다. 이3단이 전북 부안에서 열린 조남철배 아마바둑대회에 참관하고 오면서 몸살이 악화됐다는 것이었다.

기권이었다. 바둑대회에서 기권은 흔하다. 그러나 이 한판의 기권은 '팀'과 관련됐다는 점에서 바둑계를 술렁거리게 했다.

전남팀은 이로 인해 약체 강원 팀에 1대3으로 져 탈락하고 말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강원팀은 전남팀의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 이전의 주장전에서 전남의 조훈현9단이 강원의 조대현9단에게 져 전남이 1대2로 뒤져 있었다.

한국기원 측은 "이미 지난달 14일 대국통지서를 발송했고 개인적으로 참가한다는 답을 받아놓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바둑TV의 이세신PD는 "창사 7년만에 대국 펑크는 처음이다. 대회를 주관하는 한국기원은 계속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기권은 개인문제였기에 한국기원도 이세돌3단이 불참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무심했다.KAT시스템배는 지난해엔 일종의 이벤트 기전이었지만 인기가 높아지자 주최측에서 올해부터 상금을 높여 공식기전으로 만들었다.

화끈한 성격의 이3단은 주장과 보통선수에 차별을 두는 이 대회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후배 박영훈3단은 서울(북)팀의 주장으로 일류기사와 대국하는 데 세계대회 우승자인 자신은 속기 전담의 4장이 되어 2,3판을 두고도 한판 대국료를 받는 등 대회 진행에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과 이번 기권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이3단 측의 해명이지만 그는 어떻든 프로생활 최초로 공식대회에 기권을 했고 기록엔 '2패'가 그냥 올라갔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