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폭음大國'오명벗자-'잔 돌리기'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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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죽기 살기''끝장 내기''망가지기'식으로 마시는 것은 한국의 오랜 전통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전주 전통주 박물관 다음(茶)관장은 "구한말까지도 향교나 서원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라 하여 엄격한 음주의 예법을 가르쳤다"고 역설한다.

과음 문화는 일제시대에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나라 잃은 설움을 술로 달랬고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경우에도 폭음을 하게 마련이었다는 것이다.

◇가양주(家釀酒)를 살리자=집에서 술을 담가 마시면 '밖에서 퍼 마시던 술'이 '집안에서 즐기는 술'로 변할 수 있다. 어른이 점잖게 마시는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술 예법을 배우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가양주라고 해서 가정마다 담던 독특한 술에는 고유한 맛과 향, 그리고 문화가 녹아 있었다"며 "가양주를 마시면서 어찌 즐기지 않고 취하기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술 담그는 방법은 한국전통주연구소(02-389-8611)·한국전통음식연구소(02-741-5411)·전주 전통주박물관(063-287-6305) 등에서 배울 수 있다.

◇술을 음식으로 대하자=식기 수입업체 영업부장인 김경식(39)씨는 얼마 전 부원 10여명과 특별한 저녁 자리를 가졌다. 통상적인 '삼겹살에 소주' 대신 '스테이크에 와인'으로 바꾼 것. 와인 전문가인 친구를 초빙해 마시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모두 10병을 마셨지만 만취한 사람 없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자리가 끝났다. 金부장은 "와인을 마시는 서양문화는 우리 조상들이 반주(飯酒)를 즐기던 방식과 유사하다. 술을 음식의 일부로 생각하면 '망가지는 뒤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주문화연구센터 예방치료본부 조성기 본부장은 "'잔 돌리기'와 '차수 변경'만 없애도 음주 문화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며 "최근 일부 앞서가는 기업에서 불고 있는 탈(脫)알콜이나 절주(節酒)회식 바람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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