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2등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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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5보 (61~75)]
黑 . 저우허양 9단 白.왕시 5단

도요타덴소배에서 우승한 이세돌9단은 "시합 전엔 창하오(常昊)9단보다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승은 내가 했지만 실력은 창하오9단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누가 세계 최강이냐고 물으면 "내가 제일 강한 것 아닌가"하고 자신만만하던 이세돌9단이 이렇게 겸손해진 것은 놀랍다.

도요타배 결승 최종국은 승부사의 캐릭터와 운명을 생각케 한다. 계속 고전하면서도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세돌과 결정타를 던질 수많은 기회를 덧없이 흘려보낸 창하오. 실력은 있으나 우승이 다가오면 떨리는 창하오. 그래서 준우승만 여섯 번 한 창하오9단은 2등의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판의 왕시(王檄)5단이 크게 주목받은 이유도 창하오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 비슷한 실력자들은 많지만 모두 한국에 져 2등만 거듭했다. 그러나 혹시 새로 나타난 왕시는 1등의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흑▲로 지켰는데도 왕시는 백△로 파고들었다. '균형감이 좋고 무리하지 않는 왕시'라는 평가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런 강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수읽기에 자신감이 있고 힘에서 상대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이런 수를 둘 수 있다.

66도 보면 볼수록 강경하다. 달아나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은근히 역습을 노리고 있다. 검토실이 재미있는 평가를 내린다. "왕시가 의외로 끈적끈적한 데가 있군요."

74로 밀고나와 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모양 좋고 스마트한 저우허양(周鶴洋)은 이런 진흙탕 싸움이 싫다. '참고도'처럼 젖혀 싸워볼 만도 하건만 그는 75로 귀쪽을 파고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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