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맞고도 꿋꿋한 파리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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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좌파 출신으로는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1백3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파리 시장으로 당선된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은 취임 초부터 고도(古都) 파리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고 애써왔다.

지난 5일 저녁부터 6일 오전까지 하룻밤 동안 펼쳐진 '파리 백야 축제'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을 비롯한 2백76개 유적들이 밤새도록 불을 밝힌 채 잠을 잊은 시민들을 맞았다.

미테랑 도서관의 전면 유리창에서는 PC게임을 연상케 하는 조명 쇼가 연출됐고, 그 밖에 시내 40여 곳의 문화공간에서 전시·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가 벌어졌다. 1백40만 유로(약 16억원)의 예산이 소요된 이번 행사에는 모두 40여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해 파리 전체를 불야성으로 만들었다.

"파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파리 시민들에게 파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였다.

이를 위해 그는 지금까지 어떤 파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올 여름 한달 동안 센 강변을 백사장과 야자수로 장식한 해변으로 바꿔놓았다. 일요일마다 강변도로를 폐쇄해 자전거와 롤러 블레이드 천국으로 만들었다. 버스 전용차로에 폭이 70㎝나 되는 분리대를 쌓아 승용차가 접근할 엄두를 못내게 했다.

이러한 파격은 어지간한 용기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1998년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당당하게 밝힌 뒤 시장에 당선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있는 행동은 언제나 적을 만드는 법일까.

파리 시청 건물에서도 6일 새벽 심야 록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모여든 2천여명의 시민들 사이에는 들라노에 시장도 있었다. 진행상황 점검차 행사장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그 때, 운집한 군중을 헤치고 한 남자가 다가와 그를 칼로 찔렀다. 복부에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는 보좌관들에게 "행사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콘서트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끝났고 많은 관람객은 시장이 봉변을 당한 사실조차 몰랐다.

들라노에 시장의 참신하고 용기있는 개혁들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파리 시민들은 별로 없다. 정신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범인은 동성애자를 극도로 혐오한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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