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부실개혁 '자객'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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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일본의 금융계·재계가 '자객'이 떴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청의 부실정리 특별프로젝트팀에 기용된 기무라 다케시(木村剛·40·사진) KFi대표가 그 공포의 대상이다.

무명의 컨설팅회사 대표이던 그가 갑자기 주목을 끈 것은 2001년 6월 자민당 경제산업부회에 '부실 30사'명단을 제출하면서부터다. 그는 "일본의 부실채권 문제는 정상기업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썩어 있는 30개 대기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조기처리를 강조했다.

당시에는 지나친 강경론이라며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현재 일본 금융개혁의 선봉장을 자임하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금융상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줬다. '언젠가 써먹을 만한 인물'로 점찍고 있던 다케나카는 결국 지난주말 프로젝트팀에 기무라를 포함시켰다.

기무라는 문제의 30사에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이들이 부실화 돼 있다는 전제 하에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적자를 내거나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면 공적자금을 무제한 투입해 은행을 국유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유화를 피하기 위해 은행이 스스로 대출회수에 나서면 부실기업을 빨리 퇴출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기업 구조조정론은 이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실행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제시한 '부실 30사' 중 10여곳이 이미 도산했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다케나카 금융상도 "대기업이라도 부실해지면 퇴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기무라는 충격요법을 통해 금융과 실물의 부실을 동시에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부실에서 비롯된 금융불안을 방치하면 일본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므로 공적자금이라는 '완력'을 써서라도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금융계와 재계는 기무라가 곧 '기업 살생부'를 토대로 초강경 부실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살생부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 건설·부동산·유통업계 대기업들의 주가가 벌써부터 줄줄이 떨어졌다.

도야마(富山)현 출신인 기무라는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해 1985년 일본은행에 입행, 증권국·국제국·기획국 등에서 일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은행규제회의에 일본측 대표단으로 참가했으며 은행감독의 전문가로 통한다.

금융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일본 은행의 우유부단한 행태에 불만을 품고 98년 금융컨설팅회사 KFi를 차려 독립했다.

사무라이에 견줘 말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기무라를 '금융난세(金融亂世)의 자객(닌자)'으로 비유하고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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