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가 구조적 문제 짚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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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사회에서 언론은 책임있는 권력체인가. 지난 일주일 간의 보도를 보면서 필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언론이 행사하는 권력의 특성은, 의도되지 않은 부분에서도 불특정 다수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언론은 시민의 편에서 책임있는 권력을 행사하도록 늘 신중해야 한다.

최근의 김대업 녹취사건과 현대상선 자금유출 의혹은 언론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권력이 적극적으로 발휘돼야 하는 주제였다. 그러나 연일 보도된 내용들은 마치 'X양 비디오 사건'때와 같은 발언 따라잡기 보도로 일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언론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워터게이트가 규명된 데에는 워싱턴 포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언론사의 굽히지 않는 추적과 압력의 역할이 컸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의혹들이 그 실체는 밝혀지지 않으면서 선거전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언론은 시민의 편에서 사건의 진위가 조속히 규명되도록 하는 데 그 힘을 발휘해야 한다.

반면 대학평가 기획물은 그 결과에 따라 대학의 위상이 뒤바뀌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언론사가 갖는 권력의 책임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이런 평가가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대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세련된 방식의 서열화를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보다는 순위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상쇄된 감이 있다. 예컨대 평균값을 기준으로 가점이나 감점을 하는 방식을 택해 대학 간의 차이를 확대해 순위를 정하면서 대학별 점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위권과 중위권 간에 실질적으로 얼마의 차이가 있는지, 전체적으로 중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또 공통 평가 기준으로 삼은 척도들에 있어서도 대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예컨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도를 교수 평가의 중요한 척도로 삼았는데, 인문·사회분야와 이공계를 같은 잣대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또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현실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소외된 주제를 꾸준히 연구해 학문사에 남을 한 편의 저서를 발간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대학평가가 본연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지 말고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짚어내야 한다.

'성공한 여성'과 '일반 여성' 간의 의식을 비교한 보도(4일자 1, 8면)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성공한 여성'은 과연 어떤 기준에서 결정되는가. 고위직에 올라야 성공한 여성인가. 홀로 세 자녀를 키우며 소규모 회사에서 30년 간 일한 여성은 실패한 여성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남편의 사진 촬영을 위해 머리를 다듬어 주는 여성(4일자 5면 '정몽준 후보 평창동 집 공개')은 어느 쪽인가. 이러한 개념 정의는 기존의 사회구조를 지속시키는 데 언론의 무책임한 권력이 행사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더욱 의아한 것은 기획 시리즈를 통해 이 사회의 성적 편견에 대해 고발하던 중앙일보가 북한의 '미녀' 응원단에게는 지나친 관심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30일자 9면, 2일자 31면, 4일자 31면)는 점이다. 심지어 '천연미인 북녀'(4일자 S12면)에서는 그들의 화장법과 섭생까지 소개했다.

중앙일보의 보도가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주제에 대해 보다 책임성 있는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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