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청문회와 중립 소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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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석수 국무총리지명자에 대한 이틀간의 인사청문회는 앞선 장상·장대환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와는 사뭇 다르게 끝났다. 자녀 거액 증여, 변호사 소득 축소 신고 논란, 장남 병역 면제 등 金지명자에게 얽힌 문제점과 의혹을 파헤치는 의지와 강도가 떨어졌다. "따질 만한 뚜렷한 흠결이 없는 탓"이라는 게 의원들의 해명이지만 검증의 잣대와 저울이 허술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그의 도덕성과 국정 수행 능력이 "무난하다"는 후한 점수와는 별개로 공직 사회의 도덕성 제고라는 청문회의 도입 목적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청문회의 느슨한 진행은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탓도 크다. 한나라당은 세번째 지명자에게도 공세적으로 나가면 국정 혼선의 책임을 떠맡는 부담을 걱정해 검증의 고삐를 늦춘 듯했다. 민주당은 청와대를 의식했다. 무엇보다 4억달러 대북 비밀 지원설, '김대업 병풍 테이프' 조작 의혹을 둘러싼 공방에 매달린 탓에 청문회에 힘을 쏟지 않아 형평성의 논란을 자초했다.

그런 지적 속에서도 金지명자가 대선 중립의 강한 소신을 남긴 것은 돋보인다. 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경의선 철도 연결 준공식의 바람직한 시기를 묻는 질문에 "대선 운동 기간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답변했다. 그의 발언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접근 자세와는 다른 미묘한 것이어서 대담한 입장 표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답방 등 남북 이벤트를 놓고 민주당은 평화·민족 문제인 만큼 시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고, 한나라당은 신북풍 의혹을 제기해 왔다. 때문에 그런 행사의 적절한 시점을 12월 대선 이후로 설정한 것은 그의 말대로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 표시일 것이다. 정책 집행에서 국민의 공감대를 강조한 金지명자의 이런 소신이 DJ 정권 전체의 입장이 돼야 내각의 선거 중립 자세가 더욱 다져질 수 있다. 이런 소신 표명은 이번 청문회의 미흡한 점을 일정 수준 덮을 수 있는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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