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夢準식 동문서답 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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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선에 나선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화법을 놓고 동문서답·모르쇠·허무 개그·얼버무리기라는 비아냥 담긴 평판이 확산되고 있다. 엊그제 관훈클럽 토론회는 그런 논란을 결정적으로 키웠다. 예를 들어 '재산이 1천7백억원이 넘는데 선친이 물려준 돈이 얼마냐'는 질문에 그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못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물음은 鄭의원과 관련된 핵심 논쟁거리이고 국민의 궁금증이 높은 대목이다. 그런데도 이런 얼렁뚱땅식 답변은 여론을 우습게 아는 태도이거나, 초점을 피하려는 당당치 못한 자세라는 비판이 따른다.

이런 화법은 '권력과 부(富)를 함께 가지려 한다'는 질문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이 대목에선 빌 게이츠를 들먹인다. 지난번 방송기자 토론회에선 "빌 게이츠가 부럽다. 나도 그처럼 돈이 많아 자선단체에 많이 기부했으면 한다"고 대답하더니 관훈클럽에선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 경제장관을 하면 좋은 일"이라고 말해 초점을 헝클어뜨리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심지어 '신당을 같이 할 사람의 세 가지 조건이 뭐냐'는 질문(KBS 심야토론)에 "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훌륭한데 국회에 가서 일하면 실망스럽다"고 엉뚱한 답변을 했다. '서해교전 같은 일이 터지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물음에 "서해교전 당시 정부는 간섭한 적이 없다고 하고, 일부에선 정부가 간섭해 해군이 적절한 방어수단을 못 정했다고 보고 있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이런 답변 스타일이 신념 부족에 따른 것인지, 독특한 언어습관인지, 질문 취지에 대한 순간적인 이해력 부족 탓인지, 아니면 정책에 대한 정리 부족인지 헷갈린다. 여론의 검증을 피하려는 계산된 모호함이란 분석까지 나올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자세는 신뢰의 문제, 도덕성과 자질부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은 대선 후보로서 과거 행적의 솔직한 설명, 국정운영의 분명한 비전과 짜임새 있는 정책을 듣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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