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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美 샌디에이고 바이오 클러스터:CEO들 이웃사촌… 人的 네트워크가 큰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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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샌디에이고 북쪽의 토리 파인스 지역. 야자수가 늘어선 도로를 따라 '화이자''번햄 연구소''IDEC' 등 세계 유수의 바이오 기업과 연구소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이 바로 샌디에이고 바이오 클러스터다. 토리 파인스를 중심으로 반경 5㎞ 안에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와 소크연구소 등 연구기관, 노바티스 등 12개 초대형 제약사, 4백여 바이오 벤처·바이오 투자사들이 몰려 있다. "연구소 등과 상의할 일이 생기면 운동삼아 자료를 들고 상대방에게 뛰어갈 수 있을 정도"(바이오벤처인 시쿼놈의 피트 스페인 대외협력 담당)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나 연구원,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매일 서로 얼굴을 마주친다.

또 CEO 등 고소득층은 대부분 토리 파인스나 인근의 라호야에 살고 있어 이웃간 만남에서도 신규 사업 진출이나 제휴가 논의되고, 투자도 이뤄진다. 조 파네타 바이오산업협회장은 "비공식적인 인간 관계가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샌디에이고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친목 모임에서 사업이 싹튼다=제약사 리간드의 연구원이던 개리 엘드리지는 근처 연구원들의 사교 모임에서 다른 바이오 벤처의 연구원 루 쳉을 만났다.

쳉은 여기서 자신이 아주 빠른 속도로 화학성분을 분석하는 기기를 개발했다고 얘기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쳉의 장비를 이용, 식물에서 치료 효능이 있는 물질을 골라내는 벤처 '시콰이어'를 차리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칩을 만드는 시쿼놈이 최근 한 벤처를 인수한 것도 제이 리히터 부사장과 인수된 벤처기업 사장이 이웃 간인 덕분이 컸다. 리히터 부사장은 "유치원 학부모 모임 등 각종 모임에서 다른 기업 CEO들과 자주 만난다"면서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제휴 등 각종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벤처를 고를 때 CEO가 '사람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갖췄는지를 살핀다.

바이오 전문투자사 포워드 벤처스의 조엘 마틴 부사장은 "CEO가 얼마나 많은 제약사 임원들과 친한지, 연구소장은 저명한 학자들과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사이인지 등이 투자 결정의 주요 요건"이라고 말했다.

◇선순환 이루는 클러스터=미국이 불황이라는 요즘도 토리 파인스 지역 곳곳에 바이오기업의 사옥이 세워지고 있다. 노바티스의 유전자 기능 연구소도 11월 문을 연다.

벤처는 자신의 기술을 사줄 투자자와 대기업이 있어서, 투자자와 대기업은 '군침도는' 벤처가 있어서 모여드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샌디에이고에 바이오 클러스터가 생긴 것은 UCSD와 소크·스크립스연구소 등 우수한 연구기관 때문이었다.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수한 벤처들이 생겼고, 뒤따라 벤처를 인수·합병하려는 대기업과 투자자들이 몰려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

지금까지 UCSD의 교수들이 차린 바이오 벤처는 60여개나 되고, 소크연구소의 기술을 밑바탕으로 세워진 벤처도 17개사에 이른다.

갓 세워진 벤처들을 돕는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UCSD의 '커넥트 운동본부'는 컨설팅과 구인은 물론'스프링 보드'로 불리는 투자사 대상 사업설명회도 마련해준다.

커넥트 운동본부 밥 벤슨 국제협력담당은 "미국 휴스턴을 비롯, 영국·스웨덴·덴마크 등 세계 각국이 우리에게서 배워가 똑같은 커넥트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산업협회도 각종 리셉션·조찬 모임을 만들어 바이오 기업가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구원들에게 창업 마인드를 심어 주는 '랩 투 리더십(Lab to Leadership) 등의 교육 과정도 운영한다.

샌디에이고에서 1993년부터 벤처를 운영하고 있는 바이오셉트 한순갑 사장은 "투자자들은 벤처가 나스닥에 상장되거나, 대기업에 인수·합병될 때까지 수년간 꾸준히 지원한다"면서 "벤처기업들은 자금 걱정없이 첨단기술·신약개발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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