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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매카시즘 광풍, 당대 사람들을 어떻게 휘둘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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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필립 로스 지음
양선아 옮김, 새물결
460쪽, 1만3800원

젊은 시절 반짝 재능을 발하다가 단명 하는 작가들이 많은 문단에서 미국작가 필립 로스(Philip Roth·77)는 연륜이 깊어갈수록 더 중후한 작품을 써내는 원로작가로 해마다 노벨상후보에 오르고 있다. 처녀작 『굿바이 컬럼버스』로 중진작가에게 수여하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로스는 『포트노이의 고통』으로 다시 한 번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휴먼 스테인』이 그 대표적인 예지만, 로스는 미국사회에 동화되고 싶어 하는 소수인종들과 그들이 미국사회의 중산층으로 동화된 이후,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도덕적 위기를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해 다룬 뛰어난 작가다.

엄격한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면 과연 ‘투사’도 ‘쓰레기’같은 인물도 없는 걸까. 필립 로스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서 매스 미디어와 결합한 마녀사냥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새물결 제공]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화자는 작가 자신의 분신인 네이선 저커만이다. 이 소설에서 저커만은 자신의 고교시절 영문학 교사였던 머리 린골드로부터 공산주의자였던 그의 동생 아이라 린골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록한다.

아이라는 2차대전 때 군대에서 만난 전우로부터 공산주의 학습을 받고 공산주의자가 된다. 아이라는 방송배우가 된 후, 이브 프레임이라는 유명한 여배우와 결혼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저명인사가 된다.

그러나 나중에 아이라와 이혼한 이브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해 아이라가 언론계에 침투한 소련스파이였다고 폭로하자, 아이라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순식간에 몰락하고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된다.

극우 보수 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을 지지하는 작가는 없다. 로스 역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서 1950년대 매카시즘이 어떻게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신념과 삶을 철저하게 파괴했는가를 비판적으로 천착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로스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미국의 목가』에서 마약, 성의 문란, 가정의 해체, 정치적 폭력과 테러 등 1960년대 진보주의가 초래한 폐해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매카시즘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당시 미 국무부, 시민단체, 노동조합, 언론사, 그리고 헐리우드에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침투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전문가들은 로젠버그가 그 시절 원자탄 설계도를 소련에 넘기지만 않았어도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말해, 우리의 역사적 운명 또한 매카시즘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이브는 필립 로스와 이혼한 후, 『인형의 집을 떠나며』라는 자서전을 써서 로스를 비난한 영국배우 클레어 블룸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로스는 개인적 한풀이가 아니라, 매카시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미국의 1950년대를 훌륭하게 조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보수·진보, 그리고 좌파·우파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사회를 비추어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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