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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한니발 이긴 스키피오, 로마는 왜 그를 버렸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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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B H 리델 하트 지음
박성식 옮김, 사이
350쪽, 1만5900원

이렇게 거물과 거물끼리를 맞비교하고 가차 없는 평가를 시도하다니. 포폄(褒貶)의 칼날이 리얼하다 못해 박진감 넘치는 이 책은 고대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BC 236~184)를 다룬다. 그러면서 알렉산더·카이사르·나폴레옹 등 불세출의 고대·근대 명장을 불러내 군사전략과 스타일 그리고 인물됨을 비교하는 대목이 큰 볼거리이고 장관이다.

우선 서양사의 첫 거대전략가 알렉산더. 정공법 전투를 선호하는 그는 호메로스 식의 영웅 스타일. 즉 의협심에 넘쳤다. 그러나 정교한 전술이 없거나, 아니면 배제하기 때문에 휘하 병력을 종종 위험에 빠뜨린다. “그는 다리우스 2세를 야간에 습격하자는 파르메니온의 권유를 거절하며 ‘승리를 도둑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318쪽) 과대망상에 가까운 야망, 고약한 술버릇도 문제이지만, 그가 이룬 적지 않은 승리란 전략전술 없는 부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카이사르는 어떠했을까? 그도 오합지졸 야만족을 대상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진정한 책략가 기준에는 못 미친다. 성적 방종을 즐기고 이기적 동기를 앞세웠던 음모가 형으로 분류된다.

고대 최고의 명장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은 전쟁사에서 강자 대 강자의 대결로 유명하다. 스키피오는 군사·정치·외교에서는 성공했으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림은 한니발과 스키피오(왼쪽 두 번째 서있는 사람)가 자마 전투에 앞서 강화협상을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 [사이 제공]

전투의 기술을 최고조로 숙달했던 역사상 첫 장군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3세기 당시 로마제국의 최대 라이벌로 지중해 아래 해상세력을 대표했다. 당시 신진세력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막 쥐기 시작했는데, 그걸 위협했던 절대강자다. 그런 카르타고의 명장을 상대로 위기의 로마를 구해냈던 대형스타가 스키피오다. 둘이 붙은 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과 스키피오 사이의 싸움이다.

워털루를 포함한 고금의 전쟁은 “아군이나 적군의 실수 또는 무지로 승부가 결정”(240쪽)났으나, 이 전쟁은 최강과 최강이 붙었다. 두 명장 사이의 관계도 흥미롭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 직전 로마와 치뤘던 전쟁을 통해 병력 배치와 운용 등 전술을 로마에게 가르쳤다. 그걸 빨아들인 제자 아닌 제자가 스키피오였는데, 결과는 스키피오의 대승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을 장식하는 일리파 전투, 자마 전투 등에 대한 묘사는 디테일이 충실하다.

한니발의 파워풀한 코끼리부대와 이를 파괴하려는 스키피오의 지략을 두고 저자는 “전쟁술의 찬란한 컬렉션”이라고 평가하는데, 군사(軍史)전문가 B H 리델 하트의 이 책은 “고대의 전쟁 스토리가 얼마나 재미있을까?”하는 당신의 의구심을 바꿔줄 지도 모른다. 고대 지휘관들이 막연한 감에 의지했으리라는 추측도 현대인의 편견이다(323쪽). 그럼 스키피오와 나폴레옹을 맞비교하면 어떨까? 병참술은 나폴레옹의 우세승. 전략·전술가로서는 스키피오가 많이 앞섰다. 나폴레옹은 굳이 따지자면 한니발 급이다.

하지만 천하의 군신(軍神)이자, ‘군사적 목표 저 넘어’까지를 통찰했던 스키피오는 정치 무대에서는 끝내 패배하고 만다. 로마 원로원은 젊은 로마를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주인공에 대한 질시로 스키피오에게 뇌물수수죄를 씌워 정치적 파산을 유도한다. 그의 나이 쉰 초반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역사학도들이 전쟁에 관한 언급 없이 역사를 연구하거나 쓰려는 시도를 했다”며 “전쟁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역사를 과학으로부터 떼어내 동화로 만드는 시도일 뿐이다.”(345쪽) 이라고 말했다. 역사정보와 군사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말은 경청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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