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휴가지서 고민해야 할 MB의 8·15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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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오늘부터 5박6일간 휴가에 들어간다고 한다. 정운찬 총리의 사임으로 발등의 불이 된 개각 문제에 대해 대통령 스스로 “백지 상태에서 고민하고 오겠다”고 밝힌 만큼 개각이 휴가 구상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8·15 기념사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그가 들고 가는 숙제 보따리에 들어 있다고 한다. 한·일 병합 100년, 6·25전쟁 60년인 올해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이번 8·15 기념사는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진로(進路)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이 녹아 있는 대통령의 8·15 구상을 기대한다. 미·중이 함께하는 ‘G2 시대’에 대비한 국가적 생존·발전 전략에 관한 원대한 비전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그제 “미국은 국제무대의 대국(大國)으로 등장하는 중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중국을 대국으로 받아들일 방법을 찾지 못하면 세계, 특히 동아시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천안함 사태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 남북한을 둘러싼 미·중의 이해가 충돌하면 한반도는 패권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남북 간 충돌과 갈등을 최대한 활용하며 군사대국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한반도의 냉전적 분단 구도는 미국과 중국만 이롭게 해주는 꼴이다. 통일은 고사하고, 국가적 발전과 도약도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국제관계의 상호의존성은 21세기 글로벌 세계 체제의 본질이다. 남을 다치게 하려면 자신도 다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일방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그물망 같은 네트워크가 총칼보다 위력을 발휘한다. 시민적 연대와 기업적 이해 때문에 군사적 대응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다.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브릭스(BRICs) 등 신흥강국들과 다차원적 관계망을 강화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생존 전략의 열쇠가 돼야 한다. 특히 한·중·일 공동체의 실현은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대북(對北) 금융제재를 강화하는 것도 6자회담에 대한 미련을 사실상 포기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만큼 ‘비핵·개방 3000’이나 일괄타결식 ‘그랜드 바긴’의 현실적 타당성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식의 대북 접근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만큼 따질 것은 따지고, 압박할 것은 압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숨통을 열어놓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남남갈등을 뛰어넘는 포용력은 대통령의 권능이다. 비록 일부의 지지를 잃더라도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국가전략과 대북정책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해법이 담긴 MB의 8·15 구상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