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22. 서울대 출신 감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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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1995년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에 깜짝 출연한 서울대 출신 감독들. 왼쪽부터 육상효.김홍준.송능한씨.

내 생애에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를 꼽으라면 큰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였다. 1980년이니까 본고사 마지막 세대였다. 예비고사 및 본고사 점수를 합쳐 당락을 결정하던 시절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새벽 전화벨이 울리자 내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전날 아는 교수를 통해 몇 시간이라도 일찍 합격 여부를 알 수 없겠느냐고 부탁해 놓은 터였다.

"이 사장님이시죠?" 순간 먹구름 사이에서 빛이 새나오는 것 같았다. 승전보를 알리는 전령처럼 목소리가 낭랑하고 들떠 있었던 것이다.

"축하합니다."

"와~!" 절로 환호성이 터졌다. 잠자던 가족들을 깨워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날부터 한 달 가까이 한턱 내느라 신나고 바빴다. 나중에는 누가 좀 물어봐 주지 않나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다. "자제분이 이번에…." "아, 예. 서울대 경제학과 들어갔죠. 흠 흠." 짐짓 점잔을 빼며 뻐기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팔불출'이나 '못난 아비'라며 손가락질 받을 줄은 잘 안다. 어떤 이는 내가 '가방 끈'이 짧아 더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아비가 못 배웠으니까 곱절로 더 기뻤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식이 원하는 대학에 가면 보람과 환희로 온몸의 세포가 벌떡 일어서지 않을까. 그게 자식 키우는 재미 중 으뜸이니까.

이상하게도 태흥영화사에는 서울대를 나온 감독이 많이 거쳐 갔다. 장선우를 비롯해 김홍준.송능한.육상효 등이 그렇다. 오죽하면 "이태원 사장은 서울대 출신만 챙긴다"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물론 그럴 리가 있겠나. 재능만 있다면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큰 아들이 서울대 갔다고 다른 자식들(난 3남1녀를 두고 있다)을 홀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 나름의 능력과 성격으로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보여주듯이 영화는 학벌과는 무관하다.

서울대 출신 하면 흔히 자기만 알고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앞에 든 세 감독은 모두 성실하고 성격도 원만했다. 김홍준(현 영상원장)은 감독이 되고 싶어 미국 유학 도중 귀국해 임권택 감독 밑에서 연출부.조감독을 했다. 그는 남들이 마다하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을 뿐더러 꼼꼼하고 영화에 대한 지식도 많아 임 감독이 몹시 아꼈다. 오죽하면 "홍준이는 꼭 이 사장이 데뷔시켜 주소"라며 챙겼을까. 임 감독이 그런 부탁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결국 그는 '장미빛 인생'으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탔다.

송능한은 TV 미니시리즈를 쓰다 '태백산맥' 각본을 맡으며 나와 인연을 맺었다. 대본을 쓰는 솜씨가 탁월해 나는 그가 작가로 남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다른 영화사에서 '넘버 3'를 감독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감독 데뷔를 시켜줄 것 같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나는 당장 불러들여 다음 작품을 하게 했고 그게 '세기말'이었다.

일간지 기자를 하다 '장미빛 인생' '축제' 등의 시나리오를 쓴 육상효도 마음이 따뜻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타입이라 내 눈에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를 데뷔시켜주지 못했다. 첫 작품 준비를 하다 배우 문제로 일이 꼬인 것이다. 송승헌을 캐스팅하려고 매니저에게 출연료까지 줬는데 송승헌의 매니저가 바뀌는 바람에 무산돼 버렸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 간 그는 유학 중 '아이언 팜'을 만들었고 지난해 '달마야 놀자 2'를 연출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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