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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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또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노래의 한 구절이 사라져서 몇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더구나 이런 현상은 한 음유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물이 지하로 흐르다 다시 솟아오르듯 다른 시인에 의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사시의 조각들은 이미 몇 년 전 시체가 썩어 버린 음유시인의 무덤으로부터 땅 표면의 단단한 껍질을 꿰뚫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H서류』(이스마엘 카다레, 박철화 옮김, 문학동네)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알바니아 소설가입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자주 오르는 분으로 유명하지요. 2년 전에 만나뵈었습니다. 문학의 보편성과 관련된 긴 논의 끝에 결국 제가 서사시인 호메로스를 들먹였습니다. 선생님의 '노래'란 결국 인류 개개인 삶의 공유면적인 보편적인 신화 같은 거, 호메로스 같은 거 아닐까요, 하고 물었더니, 아, 신화를 읽으시는군요, 하면서 당황, 또 당황.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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